갑자기 식당에서 휴대폰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알고 보니 안식월 시작할 때 구입한 이심이 만료된 것이다. 한국을 떠난 지 한 달이 되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 쾰른과 암스테르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독일의 동부 드레스덴에서 서부에 있는 쾰른까지 장작 6시간을 기차에서 보낸다. 어제 SNS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여행을 떠나기 전, 독일인이 앱에서 제공하는 모바일 티켓을 믿지 못해 종이에 인쇄한 티켓을 지니고 행여나 종이티켓이 젖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엘홀더에 넣어 보관한다는 내용이다. 그 영상을 얘기하려는 찰나 티켓 검사원이 다가오자 앞에 승객들이 엘홀더에서 인쇄한 종이티켓을 꺼내고 있었다.
‘국민성’이란 단어로 한 나라의 국민을 이러저러하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 그냥 그러한 사람이 있을 뿐 모두를 싸잡아 말하는 건 그 나라와 국민을 이해하는 데 조금도 도움 되지 않는다. 다만 저런 행동이 일반적이라면, 독일의 어떤 사회적 혹은 역사적인 연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비무환 정신의 보편화에 어떤 배경이 있을까. 배터리가 없으면 휴대폰은 얼마든지 꺼질 수 있고 앱에 오류가 나서 티켓을 보여줄 수 없던 경험을 많이 한걸까. 그런 문제가 비일비재 하다면 또 모를 일이다.
저번에 독일의 어떤 호텔에 체크인할 때에도 종이 문서를 주며 한국의 거주지와 이메일 주소를 모두 적으라고 하면서 직원이 '독일스럽다는 게 좀 이렇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한국의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문서 대부분을 디지털로 처리하기에 친환경 정책으로 꽤 진보적인 독일도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고수하는 면이 있다.
디지털의 장점도 분명 있다. 이제 더는 휴대폰 요금이나 가스비 고지서를 우편으로 받지 않는다. 이런 고지서를 종이로 인쇄해 각각의 집에 우편으로 발송하는 수고를 줄이고 고지서만으로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종이를 아낄 수 있다. 선거 때에 오는 공보물은 어떤가. 투표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포털사이트에서 몇 번의 검색만으로 후보와 공약, 투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 관련 종이 공보물이 집집마다 배달된다.
디지털이 아무리 편리하고 환경에 도움되는 부분도 있지만, 디지털 편의를 누릴 수 없다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익숙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디지털 세상이 편리를 추구해 나아지는 것이 있음에도 반드시 이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대안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키오스크가 있어도 응대를 해줄 직원과 카드 사용을 권장해도 현금도 지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늘 염두해야 한다.
기차는 그 흔한 지연이나 취소 없이 쾰른으로 6시간을 열심히 내달렸다. 도이치반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운이 반려인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10월 28일, 드레스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