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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커피 전쟁 08화

커피 전쟁

8. 약탈

"지금 미국 뉴욕주의 현장입니다. 자, 김재기 기자!"





앵커가 미국으로 화면을 연결했다.





오마이갓!





커피 약탈, 약탈이 벌어진 것이다.





장소는 뉴욕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는 대규모 커피숍인 그릴 커피하우스였다.





이 커피숍은 뉴욕에서 가장 큰 커피숍으로 뉴욕에 방문한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들른다는 뉴욕의 명물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 커피숍에서는 활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방화를 해 놓고 약탈자들은 그 곳을 빠져나간 것이었다.





"약탈자들은 지난 밤 열시 경 이 곳을 침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재기 기자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는 노련한 리포터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뒤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경찰은 씨씨티비를 통해 지난 밤 사건을 일부 공개했습니다."





뉴스속 화면에서는 지난밤에 찍힌 씨씨티비가 보여졌다.





복면.





약 열 명의 사람들이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Fuck'으로 시작하는 욕을 입에 달고 문 앞에 등장했다.





그 후에 망치로 유리창을 깨버리고 일제히 창문으로 침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후'





몇몇은 미국 국가를 부르기도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위 갓 잇!"





어디에선가 황금 복면을 쓴 사내가 큰 포대를 들고 나타났다.





"어썸! 브라보!"





놀랍게도 그들은 그 큰 포대를 든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고 휘파람을 불었다.





커피콩을 탈취한 것이다.





그 후의 장면은 더 가관이었다.








그 황금 가면을 쓴 사람은 커피콩을 바닥에 뿌려댔다.





계속 욕을 지껄이면서.





그리고 사람들은 개처럼 그 커피콩을 핥고 냄새를 맡았다.





"와하하하!"





마치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 현장 같았다.





한참 커피콩을 핥고 냄새를 맡고 커피콩을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는 모습이 씨씨티비에 고스란히 찍혔다.





그들은 일부러 씨씨티비에는 손을 대지 않은 듯했다.





자신들의 행각이 세간에 드러나기를 의도하는 것처럼.





황금 가면을 쓴 사람은





새로운 포대를 가져왔다.





"컴 온, 버디!"





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은 그의 앞에 일렬로 앉았다.





그러자 그 황금 복면을 쓴 사람은 사람들 한 명 한 명 머리 위에 커피콩을 뿌려주었다.





꼭 교회나 성당에서 세례를 할 때처럼.





그들은 머리 위로 커피콩 세례를 받으며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 듯했다.





"으, 으음."





신음 소리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흰 가면을 쓴 사람은 몸을 뒤틀기도 했다. 마치 간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듯이.





그때였다.





"렛츠 겟 잇!"





그렇다! 온통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은 두 손에 담기도 버거운 병을 들고 나타났다.





저것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콩을 넣고 추출한 에스프레소가 가득 담긴 병이었다.





그 병을 열고 그는 머리 위에 추출한 커피를 마구 뿌렸다.





"파티 투나잇!"





그의 행위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갑자기 방방 뛰기 시작했다.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은 바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쉼없이 커피를 뽑아냈다.





때로는 그 커피를 머리에 뿌리기도 하고





원하는 이는 커피를 에스프레소 머신에다가 입을 대고 갖다 마셨다.





혀가 뜨거운 커피에 데이는 것쯤은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커피를 뽑아다가 커피숍 전체에 마구 뿌려댔다.





마시기도 하고 핥기도 하고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락음악에 맞춰 그들은 춤을 추며 방방 뛰며 커피를 마시고 뿌리고 난동을 부렸다.




퍽 업! 출동한 경찰에 의해 끌려가면서도 그들은 계속 소리를 쳐댔다.





"경찰은 이들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 뉴욕에서 박재기 기자였습니다."





그 복면을 쓴 사람들은 과연 원래 범죄자였을까.





영선은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영선의 물음은 며칠 후에 자연적으로 풀렸다.





역시 뉴스 보도를 통해서였다.





"미국 경찰은 오늘 보도를 통해 뉴욕주의 그릴 커피를 약탈한 사람들의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특정 범죄집단 소속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랬다.





그 황금 가면을 쓴 남자는 브랜든이라는 사람으로 실리콘 밸리의 한 IT 업계 엔지니어였다.





그가 주도적으로 이 폭동을 꾸민 것으로 밝혀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커피를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해서."





다른 이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들 모두 회사원, 교사, 공무원,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는 그야말로 일반 시민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 사회는 경악에 빠졌다.





이 시민들을 그렇게 광포하게 만든 커피!





커피의 중독성이 얼마나 심하기에 사람들을 폭도로 만들었을까!





곧 이에 대한 심층 토론이 이어졌다.





이 사건을 두고 과연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에 대한 토론이었다.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것은 절대 좌시되어서는 안 될 시민의 폭동입니다.





만약 이 사건을 커피의 필요 내지는 커피라는 존재의 불가피함에서 비롯된 예견된 결과라고 진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시민 폭동에 힘을 실어주는 어리석은 설명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엄벌에 처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욕구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래 선량한 시민이었던 아니건 간에 폭동을 일으킨 범죄자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찰총장의 말이 끝나자 시민 논객 쪽에서 박수가 일었다.





"맞습니다. 그들은 범죄자가 맞습니다. 저는 그들을 옹호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들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한 번 짚어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라고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 있습니까?





사고를 미연에 막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저들은 왜 저런 일을 벌였을까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커피 공급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커피 카페인에 중독되었단 말이죠.





그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커피 카페인에 중독된 사람들!





생각보다 커피 카페인의 중독성은 아주 강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학자들,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은 이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언제라도 폭동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거든요."





한국커피연합의 김회장의 발언이 끝나자 이번에도 시민 논객 쪽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옳소! 옳소! 옳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손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김회장님 말씀 잘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민 패널 분들께서는 잠시 후 큐엔에이 시간까지 정숙을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곧이어 사회자가 말을 이어갔다.





"커피의 중독성에 따른 예견된 사건이었다와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 일부의 일탈 행위이다 이 두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요. 제가 볼 때는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커피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일 텐데요, 이걸 두고 우선 김회장님께 여쭙겠습니다.





아까, 커피 소진으로 인한 사람들의 분노가 축적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정부와 사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어떻게든 커피 카페인을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내놓지 않으면 전세계가 아마도 폭동에 휘말리지 않을까 생각중입니다. 정부는 예산을 편성해 커피 카페인을 인공적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자 이번에는 똑같은 질문을 경찰총장님께 드리겠습니다. 답변해주시죠."





"범죄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물론 지금 커피 애호가들께서 무척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조차도 커피 매니아입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것을 계기로 폭동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는 개인의 선택이지 절대 옹호되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폭동자들은 본보기로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이게 제 주장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커피연합 회원들 측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피디와 사회자 모두 당황해 하며 서둘러 토론을 마쳐야 했다.




커피 연합 회장의 말대로 한번 약탈이 시작되자 커피숍 약탈은 미국 전역에 유행이 되었다.





특히 시애틀의 별다방 1호점은 가장 먼저 초토화가 되었다.





개인 커피숍 주인들은 가뜩이나 운영난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다가 약탈까지 전국적으로 번지자 두려움에 속속 문을 닫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민들을 포함한 세계의 시민들은 커피 구할 데가 더더욱 없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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