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신포도

여우와 신포도


아이를 가지자고 하면 남편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다. 애초부터 남편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내세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였다.

“자기야, 이제 우리 아이 가질까?”

남편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이제야, 왜 그러는데?”

이제야...... 그래, 이제야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내 손으로 받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 껴안아 쓰다듬어 주고 맘껏 귀여워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비로소 생겼다.

나도 이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구 년 동안 굳건히 지켜온 마음에 작은 균열이 가 이제야 비로소 아이 하나가 있을 만한 공간이 생겨났다고나 할까.

“자기하고 나하고 아기하고 셋이 단란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졌어.”

만약에 지금 아기를 갖는다면 하늘에 감사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육아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아이의 발달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즐겁게 잘 놀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기와 이십 사 시간 붙어 있으면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에 우울증이 온다고 하던데 나는 안 그럴 자신이 있다. 지난 십 년간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만큼 썼고 이제는 아이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맛바람이 센 부모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아이의 진로는 최대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지원해주고 싶다. 결코 학교의 입시 제도에 물들어 비리비리하게 크는 아이, 개성 없는 아이로 키우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본인이 원해서 한국의 입시 제도에 기꺼이 편입하기를 원할 경우 역시도 아이의 뜻을 존중해 줄 것이다. 그리고 만 이십 세가 되면 아이가 집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

“이미 늦었어.”

남편은 단호하게 말한다. 난 깜짝 놀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이라도 아이를 낳자고 하면 반색하면서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남편의 마음을 바꾸고자 더 이야기를 해 보았다.

“왜, 요새 마흔 넘어서 아기 갖는 사람들 많아. 오히려 그때 낳으면 똑똑한 아이가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읊어 본다. 나조차도 반신반의하는 정보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북촌 한옥 마을에 살고 있는 쉰 두 살쯤의 엄마와 열 살 정도의 아들이 나왔었는데 아이가 아주 점잖고 영리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 학원에도 어머니가 마흔이 넘어서 난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워낙 실력이 탁월해 월반을 했다. 사학년이지만 오학년 언니 오빠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고 그 반에서도 가장 잘하는 학생 중 하나이다.

“마흔 넘어서 아이 낳으면 기형아 확률이 높아. 만에 하나라도 기형아 낳으면 다 늙어서 잘 키울 수 있겠어? 물론 태아 감별을 할 수도 있지만 거기서 못 가리는 경우도 많대. 낳으려고 했으면 일찍 했어야지.”

남편의 말이 날 약간 비난하듯 들린다. 하지만 삼십 대의 나는 정말이지 아이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마흔 줄에 들어서야 통통하게 살 오른 아이들이 예뻐 보일 줄은 미처 몰랐다.

혹시 동경일까. 이제 영영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어쩌면 점차 임신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앞으로 내가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부러움 반, 질투 반, 뭐 그런 건가. 아니면 단순히 호르몬의 교란일까.

“그리고 나 쉰에 지금 하는 일에서 은퇴하고 싶어. 육십까지 십년 동안은 내가 그 동안 못해왔던 거 하면서 지내고 싶어.”

남편은 다시 한 번 쐐기를 박는다. 남편은 늘 수리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왔다. 일요일 저녁이면 축 늘어져서 어두운 얼굴로 “내일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하는 게 지옥 같아.”는 말을 달고 살아왔다. 로또나 되어야지. 그놈의 지겨운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나 역시도 남편이 조기 퇴직을 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남편이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의 집에 방문해서 가전제품을 고쳐주는 일 자체는 쉽다고 한다. 하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업무 중 팔십 프로라고 한다. 진상 고객을 한 번 만날 때마다 속으로 그 고객에게 총을 쏜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컴퓨터로 총 싸움을 해대나 보다.


쉰에 퇴직이라. 앞으로 십년 남았다. 우리가 가진 재산이라곤 지금 사는 이억 육천짜리 아파트 하나이다. 그게 전부이다. 남편은 퇴직금이 나오겠지만 몇 천 만 원 정도일 거고 아마도 국민연금 몇 십만 원 그 정도가 우리가 노후에 기댈 수 있는 전부이다. 내가 문제다. 늘 받는 대로 써버리는 병에 걸린 나는 저축이란 한 푼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남편이 십년 후 은퇴한다니 갑자기 경각심이 생긴다. 앞으로 십 년 동안 우리 부부는 최대한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저축해야 한다. 그래야지, 노후에 손 벌리지 않고, 폐지 줍지 않고 살 수 있다. 물론 손 벌릴 대상도 없지만 말이다.

전에는 자발적 딩크였지만 이제는 딩크로 살고 싶지 않아도 딩크로 살아야만 하는 때가 온 건가. 재정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말이다.


남편을 무리하게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만에 하나 그러다가 정말 장애를 가진 아이가 나온다면 나도 그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등 뒤에 무거운 짐 하나를 진 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사회와 정부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사회에 섞일 수 있는지를 고민 중이란 걸 안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물론 예전보다 장애인 관련 일자리가 늘기는 했다. 텔레비전에는 요새 들어 장애인 바리스타나 장애인 작업장등이 많이 나오지만 그건 소수의 장애인들 이야기이다.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평생을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또는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고 있을 뿐이다. 동생이 장애인이기에 장애 가족의 속사정을 난 잘 알고 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여우와 신포도’편이 있다. 한 여우가 포도 농장 담장을 넘어서 포도를 먹으려 애쓰지만 도무지 닿지 않는다. 그러자 ‘저 포도는 먹어도 맛없는 신 포도일 거야.’하고 단념하며 돌아간다.

그래, 포기가 속 편하지. 때로는 포기만큼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도 없다.


아이라는 존재를 신 포도라고 생각하자.

‘아이란 집을 온통 지저분하게 만들고 내 이십 사 시간을 바쳐야 하는 귀찮은 존재야. 돈도, 시간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지. 오죽하면 애는 태어나서 삼 년까지 일생의 효도를 다한다는 말이 있겠어. 아기 때야 귀엽겠지만 커 가면서 이거 해보고 싶다, 저거 해보고 싶다.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귀찮게 하겠지. 돈 드는 건 물론이고. 중 고등학생 되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청난 반항아가 될지도 몰라. 이것도 불만이고 저것도 불만이고. 나도 그랬잖아. 오죽하면 엄마가 넌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경험해 봐야 한다고 했을까. 막상 낳고 나면 왜 낳았는지 금세 후회할 거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꼬물거리는 발가락과 손가락. 침조차도 더럽지 않은 마법. 천사의 미소가 마음을 맴돈다. 모든 육아하는 엄마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의 확률, 분만의 고통, 그 모든 위험성을 감수하고 아이 낳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난 장애아를 낳을 확률을 감수할 정도로 임신을 원하는 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남의 떡이 커 보여도 그것은 남의 떡일 뿐이다. 신 포도가 끝내 여우의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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