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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 하세요 살지 마세요

독일의 생활비

by 가을밤

한국 미디어를 보면, 독일은 맥주가 물보다 싸다더라, 학비가 없다더라, 애 낳으면 돈을 준다더라 등 마치 독일은 선진국이면서 돈도 거의 안 드는 매우 가성비 좋은 생활이 가능한 곳인 듯 양 그려진다. 그러나 막상 그런 '파라다이스'에 사는 나는 한국에 있는 모든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웬만하면 독일은 여행으로만 오고 살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를 풀어보려고 한다. 독일생활의 현실이다.


독일이 살기 좋은 곳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대부분 돈과 관련된 이유였던 것 같다. 위에 언급한 이유와 덧붙여 독일은 한국보다 시급이나 연봉도 높다고 하니 돈은 적게 들면서 많이 버는, 그러니까 소위 남는 장사를 하는 곳인 것처럼 들린다.




# 독일의 슈퍼마켓 물가는 실제로 저렴한 편이다.

배추 한 포기에 1유로(1400원), 사과 1킬로에 1,5유로(2100원), 유기농 버섯 250그람에 1,7유로(2300원) 등, 과일이나 신선식품은 대체적으로 부담이 없다. 물보다 싸다고 알려진 맥주는 안타깝지만 물보다 싸지는 않고, 비슷하거나 대체로 물보다 비싸다. 생수 중 가장 싼 게 1.5리터 당 360원이기 때문에, 아무리 저렴한 맥주라도 물 가격에 비할 바는 아니다.


슈퍼마켓 물가가 저렴하니 최소한 식비는 적게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가끔 한국음식도 먹어줘야 하고, 외식도 해줘야 한다. 매일 빵과 스파게티, 감자만 먹을 자신이 없다면 독일 마트 물가는 별 장점이 없다. 아시아 식료품 가격은 종류를 불문하고 한국 가격의 1.5~2배이며, 외식을 하면 아무리 저렴한 메뉴를 먹어도 1인 17유로 이상은 감안해야 한다. 여기에 물 값이 추가이니 20유로(28000원) 이하로 외식하기가 거의 불가하다. 독일식 김밥이나 떡볶이에 준하는 되너케밥을 먹어야 그나마 만 원 이하로 어찌 해결해 볼 수 있다. 한국처럼 먹거리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 매일 케밥만 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먹는 즐거움과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 배달도 완전 시내 중심을 제외하고 거의 안 된다.



# 다음으로 독일은 세금의 나라다. 아이 없는 미혼싱글 직장인은 월급에서 약 35-37%를 떼어간다. 결혼을 해도 아이가 없으면 비슷하다. 연봉 8000만원이 넘어가면 거의 50%를 떼어가니, 자진해서 승진을 거부하는 직원들도 많다. 부양가족 없고 현재 월급으로 부족하지 않다면 굳이 업무량만 2배로 늘지, 세금 때문에 오른 월급은 티도 안 나기 때문이다.


연봉 6000만 원 (약 42800유로)를 기준으로 비교해 봤다.



-독일 (주마다 계산법이 다르다. 위 표는 한국회사가 가장 많은 Hessen 주 기준)

년 예상 실수령액: 28269유로 (3950만 원)

월 예상 실수령액: 329만 원


-한국

년 예상 실수령액: 5000만 원

월 예상 실수령액: 421만 원


->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매 월 92만 원, 매 년 1000만 원 이상이다.


땅 파면 백원도 안 나오고 주식으로 10만 원 수익도 내기 어려운 판에 92만 원은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의 연금보험과 건강보험(Krankenversicherung) 때문이다. 원할 때 병원을 가기조차 어려운데 매월 40만 원 이상 가져간다.


# 여기에 독일은 전세가 없으니 자가를 사지 않는 이상 월세를 살아야 한다. 퇴근 후 라이프와 접근성도 중요하므로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산다고 가정해 보자. 아래 매물은 "난방/관리비/전기세/인터넷을 포함하지 않은 월세"다.


15~20평짜리 집이 120만 원~180만 원이다. 난방비는 제곱미터 당 약 4유로(5600원)이므로, 아래 매물 중 첫 집을 기준으로 본다면 난방비 포함 월세는 총 1058유로, 즉 148만 원이다. 난방비는 쓰는대로 나오므로 언제든 추가될 수 있다.


전기세 약 50유로(집이 작고 1인 기준), 인터넷 30-40유로를 더하면, 약 1200유로가 나간다. 독일에서 연봉 6천만 원 월급쟁이가 매월 2355유로를 수령하여 1200유로를 집에 쓰면, 1155유로(160만 원)가 남는다. 이 돈으로 이제 교통비, 핸드폰, 식비, 쇼핑, 외식, 저축, 재테크, 여행 등 모든 것을 충당해야 한다.


게다가 독일 집은 일반적으로 부엌이나 가구가 미포함이니 처음 들어갈 때 가구비용도 많이 들 것이고, 만약 차라도 있다면 주차장을 같이 임대해야 하므로 월세에 80유로 이상 추가된다. 부엌을 개인재산으로 인식하는 문화 때문에 이사할 때 실제로 부엌을 뜯어서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부엌은 매우 고가이므로 갖고 다닐 거 아니라면 반드시 빌트인 부엌이 있는 월세를 추천한다.



이처럼 모든 게 다 돈이다. 일본도 사정이 매우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독일인, 일본인들이 달리 검소한 게 아니라 '검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축은커녕 마이너스만 안 생겨도 다행인, 입에 풀칠만 겨우겨우 하는 인생이 될 테니까.




이렇게 생활비가 비싼데 독일만 오면 공짜로 다 되는 것처럼, 원 없이 맥주랑 소시지를 거저먹는 것처럼 착각해선 안 된다. 여행으로 잠시잠깐 왔던 이미지에 현혹되거나 단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선 안 된다. 이민은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이 통째로 변하는 것이며, 생활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다른 거 죄다 비싸면서 맥주하나 싸다고 뭐 그리 유세야' 라고 하시면 된다.



본문 사진출처: 네이버, interacto.de, immobilienscout24.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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