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출생지를 찾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어느 도시요?"
우리나라에서는 살면서 거의 쓸 일이 없고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출생지. 대한민국 신여권에는 기재할 수 있지만 구여권은 선택지 없이 여전히 기재가 안 되어있다. 그래서 독일에 오신 많은 한국분들이 비자신청 시 출생지란에 대충 서울, 부산 이렇게 사실확인이 안 된 정보를 적는 경우가 많다. '별 일이야 있겠어'하는 생각에 대충 적는다. 실제로 별 일이 없다. 그러나 만약 1%라도 시민권취득(국적변경) 가능성이 있다면 정확히 알고 적어야 뒤탈이 없다. 나는 시민권취득 계획은 없지만 우연히 실제 출생지를 알게 되어 뒤늦게 바꾸느라 8주 이상 걸렸고, 여전히 많은 서류들엔 이전 출생지(?)가 적혀있다.
독일에서 신분을 증빙하는 모든 서류에는 출생지가 함께 기재된다. 여권, 비자(체류증), 학교 졸업증, 주소등록증, 혼인신고서, 근로계약서 등. 외국인 중 여권에 출생지가 없는 국가 출신은 본인이 독일에서 최초로 적은 장소가 출생지로 고정된다.
정확한 출생지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기본증명서'를 떼야한다. 출생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 이름으로 증명서를 떼면 내용 중간에 '출생정보 - 출생지, 신고자, 신고일'등이 적혀있다. 거기 나와있는 출생지가 본인의 진짜 출생지다!
나는 서울과 경기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경상북도에서 태어나서, 기억이 하나도 없는 도시가 서류에 적혀있었다. 한국 정서 상, 친정 근처나 남편의 직장에 따라 근처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게 적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한국인들에게 '고향'과 '출생지'는 조금 다른 의미다. 누가 나에게 고향을 물으면 서슴없이 경기도 ㅇㅇ시 라고 할 것이다(서울보다 좀 더 오래 살았으므로).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서 '한국의 고향'을 생각하며 출생지를 적으면 오류가 발생한다.
독일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출생지는 평생 불변이고 신분증/여권에 찍혀있는 것'인데 어째서 너의 출생지를 모를 수가 있나?'라고 묻는다. 그러면 길더라도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한다. 이 질문도 많이 들어서 핸드폰에 녹음해 놓고 들려주고 싶었다.
"한국인들에게 출생지는 큰 의미가 없다. 출생지와 고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그 어디에서도 출생지를 묻지 않는다. 심지어 신분증이나 여권에도 적혀있지 않다. 출생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의 관청에서 증명서를 떼는 것이며, 그제야 정확한 출생지를 알게 되는 거다. 나도 그렇게 알게 됐다."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그제야 여권을 확인하고 '정말 그렇네' 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뒤늦게 알게 된 나의 진짜 출생지, 이미 독일에서 온갖 증명서며 비자까지 나온 마당에 이걸 바꿔 말아, 고민이 된다. 사실 굳이 안 바꿔도 무방하다. 독일인들 말대로 어디에나 적혀있는 반면 궁금해서 묻는 사람도 없거니와, 출생지의 진위여부만 따로 문제 삼을 일도 없다. 심지어 취업을 할 때도 그냥 체류증에 쓰여있는 출생지로 인사정보가 등록된다.
단, 한국 국적을 버리고 독일 시민권을 받을 의사가 있다면 미리 변경해 두는 게 좋다. 국적변경 신청 시 출생신고서를 함께 내야 하는데, 이때 비자에 쓰인 출생지와 한국에서 떼온 서류의 출생지가 일치하지 않으면, 비자카드를 정정해서 가져오라고 한다 (주변 사례를 봤다). 한국에서 단순히 영문 서류만 가져가와선 안 된다. 원본 한국어 서류를 떼서 독어로 공인번역사 번역 후, 공증과 아포스티유까지 거친 서류를 독일 내 관할 외국인청에 제출하여 현재 비자카드를 새 카드로 변경해야 한다 (체류증 재발급이므로 수수료 약 60유로가 든다).
진짜 출생지가 적힌 체류증을 받았다면, 이제 독일에 뿌려놓은 정보들을 정정해주어야 한다. 솔직히 알리지 않으면 모르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귀찮아도 한 번 해주는 게 좋다.
변경이 필요한 곳들은: Bürgeramt 혹은 Rathaus(시청/동사무소), 직장, 학생이라면 학교, 은행대출이 있다면 대출받은 은행, 그리고 그 외 출생지가 적힌 모든 서류
제목 사진출처: Photo by Van Tay Medi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