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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열정페이

무보수 근로

by 가을밤

근로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열정페이. 한국에만 존재할 것 같던 열정페이는 독일에도 있었으며, 나는 그 열정페이의 경험자다.


독일에선 Werkstudent(워킹스튜던트)와 Praktikum(프락티쿰/인턴십) 제도가 있다. 워킹스튜던트는 많지 않아도 월급이 나오지만 프락티쿰은 unbezahltes Praktikum(돈 안주는 프락티쿰)이 가능하다. 쉽게말해 열정페이 인턴십이다. 졸업 필수요건에 필요한 인턴십이거나, 3-6개월 단기 인턴이라면 무보수 자리가 드물지 않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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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본사단지와 하루에도 수십번 오르락내리락한 사무실


나는 졸업필수요건으로 외국어교재 전문 독일출판사의 인턴이 되었다. 필수요건이지만 학교에선 자리를 찾아주지 않았고 다른 몇 개 기업에서는 내가 '모국어 화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을 하였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업계에서 유명한 출판사의 본사에 가게 되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인턴을 위해 슈투트가르트로 이사했고, 알바 외에 생에 처음 '출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단정하게 입고 독일 직장인들 무리에 섞여 걷던 길, 공기, 그때의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근무에 대한 대가를 단 1유로도 받지 않았지만 나는 당시 조건이 '꽤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인턴 기간동안 열악했지만 회사와 아주 가까운 1인실 기숙사가 제공되었고, 점심식사는 무료였다. 무엇보다 직원분 그 누구도 나를 하대하지 않았다. 한국 내 독일관련 기관에서 일할 때 복사기가 나인지 내가 복사기인지 사무실 구석에서 자존감 깎이며 기계와 물아일체가 될 뻔한 경험도 이곳에선 없었다. 내 자리도 컴퓨터가 놓여진 엄연한 한사람 자리였다.


KakaoTalk_20150831_232659696.jpg 인턴기간동안 제공받은 숙소. 여성기숙사였다


담당 사수가 있었지만 모든 직원들은 나의 질문을 반기는 직장생활 선배였다. 서투른 일은 다시한 번,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구내식당에서는 직급과 업무에 상관없이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수다를 떨며 나는 독일회사를 조금씩 경험해 나갔다. 인턴과정 통틀어 아마 지금까지도 경험하기 어려웠을 독일출판사 내 생리와 시스템을 알 수 있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 나날들은 열정페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나쁘지 않았으며, 어쩌면 내가 독일에서 직장을 다녀도 괜찮겠다는 결심에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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