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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엔 의외로 비정규직이 많다

독일의 기간제 고용

by 가을밤

독일 직장은 안정적이고 롱런할 것이란 이미지와 달리, 독일 내에는 의외로 비정규직이 많다.


독일은 미국과 유사하게 공채 개념이 없어서 지원 시기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공석이 나는 대로 수시채용 하는데, 채용희망 기간에 따라 기간제(befristete Stelle=비정규직)와 무기한직(unbefristete Stelle=정규직)으로 분류된다. 채용공고를 보면 그 자리가 비정규직인지 정규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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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shot 2023-10-25 142408.png 정규직(위) 채용공고와 비정규직(아래) 채용공고. 'Befristeter Vertrag: 기간제 계약'표시가 있다. (출처=stepstone.de)


기간제 즉,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이유는 정규직원의 긴 공석(병가나 육아휴직 등)으로 인해 단기간 인력이 필요한 경우이거나, 직종 특성상 경력이 긴 사람(예를 들어 최소 8년)만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경우 등이다. 또한 프로젝트 기간만 필요한 비정규직도 있다. 기간제 직종은 회사에서 직접 채용하거나 Arbeitnehmerüberlassungs(근무임대/시간제인력 파견회사)을 통해 인력을 구한다. 대표적으로 독일철도회사 도이체반(DB)이 수 많은 자리를 이렇게 채용중이다. 이 방법으로 채용하면 직원은 시간제인력 전문 파견회사에 소속이 되고, 월급도 파견회사로부터 시간제 수당으로 계산되어 받는다.


비정규직이라도 회사 안에서 일을 하는 형태는 같으므로 겉으로 보기엔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알 수 없다.


비정규직은 통상적으로 한 회사에서 18개월 이상 연속근무를 할 수 없다. 예외를 적용해도 노동법상 최대 3회 연장, 총 24개월(2년)이 넘으면 여지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내보내야 한다. 어차피 계약서에 기간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다른 합의가 없다면 자동으로 계약 마지막 날 퇴근 후 떠나면 된다. 정규직으로 채용하려면 먼저 회사에 공석이 나야 할 것이고 가벼운 인터뷰나 연봉협상 절차를 거친 후 새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된다.




독일의 비정규직은 명확한 장단점이 있다. 일단 장점으로는 정규직 직원과 차별대우가 거의 없다. 매니저를 제외하고 동료가 비정규직인지 모르는 직원들도 많고, 안다고 할지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차별, 따돌리거나 하대하는 분위기가 거의 없다. 정규직원보다 월급이나 복지혜택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직원을 챙겨주려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직과 연봉협상 가능성이 자주 오기 때문에(새 계약서를 정규직보다 자주 쓰므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단점은 장점의 이면에 있는 부분들이다. 아무리 차별대우가 없다 해도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안전하지 않다. 리스크를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년, 2년마다 이직을 준비하는 건 적잖은 스트레스일 것이다. 회사의 복지혜택도 계약된 기간 내에서만 받을 수 있으니 장기계획을 세우거나 근속년수로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출산 등의 계획이 있다면 육아휴직과 함께 고용기간이 그대로 끝나버릴 수 있다.




회사에겐 단점보다 장점이, 직원에겐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제도이다.

24개월 제한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독일 회사들은 비정규직원을 많이 그리고 오래 채용하기 위해 일종의 편법을 쓰기도 한다. 일단 처음 18개월 계약을 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휴식기 3개월 동안 잠깐 다른 회사에서 일하거나 쉬게 하고, 3개월 뒤 다시 18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그러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비용도 아끼고, 같은 직원이 다시 오면 새로 교육시킬 필요도 없으니 그야말로 1석 3조 4조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5회 이상(총 7.5년) 연장한 동료가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퇴사한 직원이라 그렇게까지 연장을 하면서까지 머무른 이유는 모르지만 끝까지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일을 하든 본인의 선택이지만 회사가 이런 방법으로 비정규직 무한굴레를 돌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시작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정말 괜찮은 줄 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비정규직이 싫거나 정규직 전환을 원한다면 늦지 않게 담당 매니저에게 '비정규직 연장은 싫다'는 의사를 뚜렷하게 밝히고 대안을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제목 사진출처: unsplash

본문 사진출처: 자료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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