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직장 구직
독일에서 첫 구직을 할 때부터 몇 번의 이직을 거친 지금까지, 인터뷰만 수십 번 서류는 최소 백 번은 보낸 것 같다. 그만큼 엄청나게 떨어져 봤던 건 덤이고. 독일에서 뭔가 당락을 결정하는 메일을 받는다면 3초 만에 내가 붙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첫 세 문장 이내에 'leider(유감이지만)'가 있다면 떨어진 거다. 더 볼 것도 없다. 하도 많이 보니 나중엔 굳은살이 배겨서, leider가 보이면 미련 없이 바로 "다음으로 패스!" 를 외쳤다.
독일회사 지원방식은 미국이랑 상당히 유사하다. 미국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커리어 관련 경험이나 강연을 들어보면 채용방식이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Lebenslauf(이력서)와 Anschreiben(커버레터 혹은 자소서), 그리고 학교 졸업증과 다녔던 회사의 Arbeitszeugnis(재직증명서/업무평가서)를 첨부하면 지원완료. Anschreiben을 요구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독일 자소서는 짧고 간결하게 쓰면 된다. 구구절절 어느 집안 어디서 몇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는지 아무도 관심 없다. 소설 쓰지 말고 최대한 1장을 넘지 않도록, 자신이 원하는 커리어 방향 및 강점을 표현하면 된다. '나를 소개하는' 목적보다는 지원하는 회사에 예의를 갖추고 동기를 표현하는 목적이기 때문에 굳이 화려한 수식어를 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Anschreiben보다 더 중요한 건 Lebenslauf(이력서)다. Lebenslauf란 단어를 뜯어보면, Leben(삶)+Lauf(과정) 즉, 내가 걸어온 삶의 과정이다. 여기에 보통 tabellarisch(표로 된)이란 말을 붙이는데, tabellarischer Lebenslauf를 내라는 말은 '너의 삶의 과정을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해 봐'란 뜻이다. 그래서 이력서 역시 아무리 많은 내용을 담고 싶어도 추리고 눌러서 2장 이내로 작성해야 한다. 원래 긴 글보다 요약이 어렵고, 어려운 걸 쉽게 쓰는 게 능력이다. 단어 선정과 순서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전에 법무팀에서 일할 때, 우리 팀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정리한 적 있는데 확실히 깔끔한 이력서가 더 눈에 들어오고 지원자의 얼굴도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매니저 역시 난해하고 너무 빼곡하게 적은 이력서를 보며 눈에 잘 안 들어온다고 그냥 말로 물어봐야겠다는 코멘트를 했다.
독어 이력서 예시 파일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용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Lebenslauf보다 더 중요한 게 Vorstellungsgespräch(면접)이다. 면접은 나를 Vorstellung(소개)하는 Gespräch(대화)이다. 따라서 이 시간에 상대에게 나를 충분히 알려야 한다. 대부분의 독일 회사들은 이력서가 아쉽더라도 면접에서 맘에 들면 채용을 고민하지 않는다. 즉, 스펙이 좀 부족해도 면접이 만족스러우면 충분히 합격 가능하다. 물론 명문대라면 타이틀이 주는 힘도 있겠지만, 그 못지않게 현재 지원자가 보여주는 동기, 능력, 경험에 많은 가치를 매기는 것 같다.
나는 정말로 한국분들이 면접을 볼 때 긴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면접은 일방적인 평가가 아니라, 회사랑 내가 '서로 잘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를 시험하는 만큼 나도 회사를 시험하는 자리다. 회사에서 나를 원해도 내가 회사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다. 사진만 보고 적극적으로 이성을 소개받아도 실제로 만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독일에 있는 한국회사를 보면 외국직원들이 한국직원들보다 대체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인들은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발적 을이 되는 것도 있지만, 외국인 지원자들은 본인이 원하는 조건이 아니면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봉협상을 위해 일부러 정규직을 포기하고 1년 단위 계약직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한 번에 오케이 하고 정규직이 되면 회사에게 연봉의 키를 완전히 넘겨주는 것이니까.
따라서 독일에서 구직활동을 한다면 적극적으로 하되, 서류보다는 인터뷰에 에너지와 신경을 쓰는 게 좋다. 그리고 떨어지는 것에 너무 마음 쓸 필요 없다. 나 싫다는 사람 붙잡고 늘어져봐야 어차피 그 관계는 잘 안 된다. 어떻게든 나랑 맞는 '딱 한 곳'만 찾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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