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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Nov 17. 2019

백수를 응원하는 말들

자유를 위한 변명



그런 삶을 살겠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했어요.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은 이제 하지 말자고.

하고 싶으면 그냥 해보자, 하고.

고민만 줄곧 하고 뛰어들지 않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말이지요.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겠다는 건 아니에요.

바람의 방향을 체크하고 파도를 관찰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몸에 물을 적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알게 되었지요.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나의 길도 흘러간다는 것을요.

생각이나 고민보다 더 중요한 건

나를 마음껏 적시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나를 쓰는 일이니까요.


멀리서 바라봤을 때

늦은 오후의 태양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파도 위에

점점이 박혀있던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보석 알갱이처럼 반짝거렸어요.


자신을 흠뻑 적시는 일이 이토록 아름다운 거구나.

그날 난 바닷가에서 생의 보물 하나를 캐낸 사람처럼

그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흐뭇하게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지요.


‘여행에서 돌아가면 사표를 내야겠어!’



퇴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수만 가지인데 반해 퇴사를 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생각을 바꾸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둘러싼 수만 가지 이유의 장벽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가서도, 책을 보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보고 싶은 문장만 보이고 듣고 싶은 말들만 들렸다. 하겠다고 말하면, 마음속으로 조금은 부럽지만 일단은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섣불리 위로하거나 흔쾌히 그러라고 말하지 못하는 종목들이 있다. 이혼, 퇴사, 그리고 백수. 나는 절실했다. 단지 정신승리가 아닌, 위로의 말이 아닌 삶에서 길어 올린 담담하고 냉철하고 확실한 응원의 말들이 필요했다. 그런 말들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훗날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못한 일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 마크 트웨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 버지니아 울프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의 가장 심오한 자아정체성, 즉, 오랫동안 수행해온 역할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자아를 발견하는 일이다." - 칼 융


"너희들이 말하는 근면이라는 것도 자신을 잊고자 하는 도피책이자 의지에 불과하다." - 니체


"나는 세상 사람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이 고결하다는 믿음이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 버트런드 러셀


"삶을 돌이켜보면 때때로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보면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행동이었고 언젠가는 그것이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내디딘 발걸음이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 무탄트 메시지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 조셉 캠벨


"나는 취미가 없다. 나는 일중독자도 아니고 떠맡은 직무에 부지런히 전념하는 사람도 아니다. 작곡을 하고 음악을 듣고 온전히 집중해서 책을 읽는 이런 활동은 내 삶의 핵심이다. 이것을 취미라 부른다면 그 활동을 조롱하는 것이다." - 아도르노



세상의 많은 시인들, 작가들, 철학자들, 심지어 호주 원주민 부족까지 모의 작당해서 합심하여 내 귀에 캔디와 같은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고 등을 토닥이며 응원을 해주는 것만 같았다. 꿈도 꾸었다. 과로와 지옥철에 시달리던 한 직장인이 어느 날 내면 자아의 소리를 듣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백수로의 험난하고도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나게 되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런 나를 위해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백수가 되고 보니) 그들이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었다. YOLO가 한번 사는 인생, 흥청망청 살아보자. 그런 의미가 아닌 것처럼. 나는 그만큼 절실했다.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둔 건 니체 때문이라고, 칼 융 때문이라고,... 할 생각은 물론 없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후회라면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더 일찍 깨닫고 백수가 되지 못한 것일 뿐. 역시 그들의 말을 듣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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