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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Feb 09. 2021

4월, 잔인한 그 봄

앞으로의 '우리'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떠났다, 무심하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첫 수술을 하기 전에는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었건만.

이미 암환자가 된 이후 또 다른 암을 치료하기 위해 고민하며 보내는 하루 하루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를 듣고 온 그 날. 우리는 바로 여행을 떠났다. 시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남편은 어머님의 배려로 며칠 휴가를 받았고, 시어머니와 나는 전화기 너머로 서로 울기만 했다. 내 몸이 아픈거지만 시댁 식구들한테 죄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지금껏 사회로부터 강요받았던 본능적인 며느리의 삶이었겠지. 내게도 그런 본능이 있었던 것일 뿐이고. 미안했다 모두에게.


따뜻한 남쪽으로 떠났다. 우리 남편은 강해져야 하는 순간에 강해지는 사람이라 좋다. 때로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남편의 이 아무렇지 않음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 순간 우리 둘 중 누구라도 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동안의 '우리'와는 되도록 먼 곳, 앞으로의 '우리'를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떠났다. 무심하게.

여행을 하는 동안만큼은 우리의 처지를 잊기로 했다. 그냥 원래의 우리처럼 유쾌하고 즐겁고 명랑하게 보내보자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눈을 감으면, 잠을 자면, 자꾸만 힘들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이지만 꿈을 꾸고 나면 힘들었다. 아마도 얼마되지 않는 삶을 사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2016년 4월, 그 한 달이 될 것이다. 잊자, 생각한다고 지금 당장 달라지는 건 없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여행의 마지막 날쯤, 남편의 친구 부부이지만 나에게도 참 소중하고 늘 고마운 분들과 연락이 닿았다. 많이 걱정해주었고, 많이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소개해주었다. 지인의 누나가 다니는 병원의 의사 선생님인데 되도록 아이를 낳는 방향으로 늘 고민해주시는 분이라고 하며 적극 추천해주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병원에 전화를 걸어 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일자로 예약을 잡았다. 내친김에 그 병원 외에도 다른 병원에도 예약을 잡았다. 이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병원을 전전하며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겠지. 여행 중 이미 남편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지 '아이'가 아니라고. 내가 있어야 그 다음에 우리의 또 다른 미래가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눈물이 났다. 



고마워서 울었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찡한 마음이 들며 고마웠다. 남편도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반드시 무언가는 '포기'해야만 했을테니. 누군가가 '무언가'를 위해 '포기'라는 것을 할 때, '무언가'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냥 큰 이유가 없어도 미안하고 고맙다. 그게 내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두려워서도 울었다. 아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 부부의 미래가 난, 조금은 두려웠다. 나의 부모님, 아니 엄마는 '나와 내 동생' 때문에 부부로서 힘든 순간들이 찾아와도 견뎌냈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결혼 10년차, 20년차, 30년차가 되어도 우리가 처음처럼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 때에는 둘 사이의 사랑이 아닌 끈끈한 유대감과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부부 사이를 유지해주지 않을까라는 걱정과 우려. 그게 내 마음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 없이 살아가야하는 삶은 두려움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해서 울었다. 표준 치료를 선택한다면 나는 자궁을 잃는다. 여성성의 상징인 그 자궁을. 나이가 들어서도 자궁을 적출하면 큰 상실감과 허무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걸 우리 엄마를 통해 알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삼십대 초반이다. 수술을 하고 나면 내게 폐경과 더불어 갱년기가 찾아올 것이고 엄마가 겪었던 그 힘든 시간들이 내게도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한창인 나이의 여자에게 자궁을 잃는다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이 모든 것이 너무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남편과 친정 식구들과 시집 식구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다. 내가 먼저였다. 우선은 다른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고 그 다음에 내 마음을 결정하기로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다시 일상이었다. 내 몸 속과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요동치는 번뇌와 고통은 전혀 일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게 또 슬퍼서 혼자 많이 울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에는 봄빛이 가득했고 화사했으며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나만, 우리만, 슬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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