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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08. 2021

현명한 선택

'나'의 인생은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마치 쇼핑을 하듯 병원 투어가 시작되었다. 예약해 두었던 날짜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혹은 전철을 타고 병원으로 떠나는 길은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그런 여정이었다. 나의 미래를 결정지을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다른 곳에서도 역시 답은 한 가지일까?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조금 더 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꿈꾸던 완벽한 미래는 아닐지라도 그 근처만이라도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남편과 아내와 아이로 이루어진 온전한 가정을 꿈꾸는 것이 이토록 내게 어렵고 조바심 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찾은 병원에서는 선택 진료를 하지 않았다. 우선 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했고 꽤 젊어보이는 의사와 마주했다. 병원을 찾았을 때 등록한 진료의뢰서와 조직 검사 결과 자료를 뚫어지게 보던 그 의사는 초음파실로 가서 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또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한 마디 했다.


-꽤 골치가 아픈데요.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이렇게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려서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마주한 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내가 겪어온 고통의 시간을 고작 10분 동안 아팠을 '골치'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불쾌했다. '네 놈이 신통방통한 해결책이 있다하더라도 너한텐 수술 안받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답은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표준치료. 동시발생암이라고 보기도 전이로 보기도 애매하며 이런 경우에는 자궁 적출술을 해야만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내놓았다. 


패스. 




며칠 후 남편 친구에게 소개받은 분당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 그 날 아침 샤워를 하면서 몸이 간질간질 거려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생전 나지 않았던 알러지가 온 몸에 올라왔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료 예약시간이 이른 시간이라 마침 분당으로 출근을 하는 지인의 차를 얻어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진료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은터라 병원 로비 카페에서 가볍에 차를 한 잔 마시며 혹시라도 모를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었다.



역시 소개받았던 그대로 좋은 의사선생님이었다. 첫 번째 수술을 해주었던 분도 좋았지만 이 분은 나이가 좀더 있으셔서인지 인자하고 중후한 느낌이 강했다. 똑같은 절차로 나의 상태와 가져온 자료를 점검한 후 나와 마주한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표준 치료가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환자분이 나이도 어리고 아이도 준비하신다고 하니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면 우선 과배란을 해서 난자를 냉동보관해 놓고 항암치료를 먼저 받은 후에 임신 준비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냉동된 난자로 수정을 시켜서 다시 치료받은 후의 자궁 내막에 착상을 시키는 방법인데, 사실은 조금 위험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몸이 많이 힘들어지고 독성이 생겨서 착상이 잘 되지 않을 수 있고 혹시라도 그렇게 해서 아이를 가진다 해도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아이를 원한다면 수술 전에 이러한 절차로 진행하는 것인데 환자분과 가족분들이 상의하셔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진행을 하는 것은 환자분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잘 결정해보세요.



또 다른 선택지가 나왔다. 그렇지만 무서웠다. 이 선생님은 무조건 아이를 낳는 방향으로 환자를 설득해서 진료하기로 유명한 분이다. 그런 분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한다면 나, 결국 표준치료를 해야한다는 것인가. 우선 의사 선생님이 연결해준 난임 관련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으러 이동했다. 지금 선생님이 이야기한 난자 냉동 보관 절차에 대해 이야기를 우선 나누어보라고 그 분야 다른 선생님을 연결해준 것이었다. 그 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에 하나 이 절차로 진행하기로 가족들과 결정한다면 적어도 언제까지는 자신을 찾아와서 과배란 주사를 맞고 준비를 해야하며 등의 절차를 이야기해주었다. 


다음은 또 다른 난임 관련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그 분은 대리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때 처음 알았다. 대리모가 불법도, 합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의 건강도 지키며 아이를 갖기 위해서 남은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을까. 그건 욕심일까. 이 곳에 찾아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 처지가 또 구슬프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가는 '나'를 잃겠구나. 끝도 없이 '나'를 잃고 결국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겠구나. 

'나'를 지키기로 했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아이를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버릴 수가 없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 결정하셨냐고. 쿨하게 대답했다. 네, 라고.

'나'의 인생은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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