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문제를 푸는 디자이너 (3)

커머스 현장에서 배운 UX 인사이트와 이직 직전 회고의 기록 Ep.3

by 김엔조


Ep.3 존재감은 설득이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진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회의에서 말할 때면 늘 생각했다.
“내가 괜히 이 흐름을 끊는 건 아닐까?”
“내 말이 아까운 시간이 되진 않을까?”


그래서 처음엔 말을 줄이고, 듣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그냥 듣는 것’은 아니었다.
내 안에 질문을 품고,
나라면 어떻게 접근했을지를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떠올린 질문과, 실제 회의에서 나오는 질문이 일치하기 시작했고
디자이너, PM(기획자), 개발자의 답변이
내가 예상했던 논리와 비슷하게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생각했다.
“아, 나도 컬리의 디자인을 이해해가고 있구나.”




그리고 나는 말을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나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내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나보다 통찰력이 뛰어난 동료들이 많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조율하는 디자이너였다


디자인 위클리에서 논의하기 전,
나는 기획자와의 라포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달하고,
기획과 디자인 사이에서 의견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해왔다.


내 입장은 언제나 "디자인 관점에서 봤을 땐 이렇다"가 아니라,
**“이 안을 통해 우리가 함께 도달해야 할 목적을 어떻게 더 잘 달성할 수 있을까”**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항상 먼저 들으려고 했다.
사업부의 입장도 고려했고,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맞는지를 함께 찾아가게 만들었고,


디자인과 기획팀, 개발팀이 한 팀으로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열린 태도로 조율하다 보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었고,
그런 결정은 나중에 더 강력한 공감과 동의를 얻어냈다.




작은 조직에서의 경험이 만들어준 나만의 방식


나는 이전 커리어에서

작은 스타트업, 빠른 A/B 테스트,
디자인-기획-개발이 함께 스프린트하는 환경을 꾸준히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시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자와 함께 문제를 설계하고 쪼개고 풀어나가는 방식을 익혔다.


컬리에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서가 내려오기 전부터 기획자와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 나눠서 설계하면 좋을까?”를 이야기했고,
하나의 기획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결국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다가가는 전략을 제안했다.

(좋은 분들을 만났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그게 내가 가진 강점이었고,
내가 조직 안에서 ‘목소리’로 자리 잡게 만든 방식이었다.




그 결과가 지표로 이어졌을 때


그렇게 함께 만든 안이
실제 데이터로 효과가 증명되는 순간이 있었다.
전환율이 오르고, 고객 반응이 좋아지고,
그 숫자들이 쌓이면서 팀 안에서
내 의견에 자연스럽게 신뢰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율하고 조정하며 만들어낸 결과가

어느 순간 실제 사용자 지표로 이어졌을 때,
팀 안에서 내 의견에 신뢰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말했던 방향이 실제로 전환율을 높였어.”
“저번 실험에서 잘 먹혔던 흐름, 이번에도 반영해볼까?”


이런 말들이 오가면서
나는 더 이상 ‘조용히 듣기만 하던 사람’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직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더 크게 말하지 않았다. 더 분명하게 말했을 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조직 안에서 목소리를 가질 수 있었던 건
크게 말해서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이밍을 기다리고, 이해를 쌓고,
내가 잘 아는 영역부터 천천히 꺼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신뢰를 만들어가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








[현실에서 문제를 푸는 디자이너] 회고 시리즈


커머스 생태계에서 겪은 실전 UX,

그리고 이직 직전 1년 9개월을 돌아보는 디자이너의 회고


Ep.1 컬리에서의 1년 9개월, 나의 챕터를 시작하게 만든 질문들

Ep.2 사용자를 대신해 결정한다는 것

Ep.3 존재감은 설득이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진다 ← 지금 읽는 글

Ep.4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 질문

Ep.5 남기고 싶은말, 그리고 다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위해






다음 편에서는

내가 왜 이직을 결심했는지,

그 선택의 흐름을 돌아보며

어떤 기준으로 다음 챕터를 준비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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