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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선 Feb 19. 2024

첫걸음을 위한 밑바탕 다지기

기초 공사를 단단히

본격적으로 홀로 서기 위해 주변을 정리했다. 소소하고 지루한 일들이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말은 쉽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되면 퇴사를 해도 결국 다시 돌아가거나 계속 다른 일을 알아보게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가장 중요한 돈

 모든 일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안정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한순간 끊기기 때문에 수입이 당장 들어오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만들어 놔야 한다.


 가지고 있던 빚들은 모두 정리하였다. 이때만 해도 학자금대출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이자도 저렴하니 천천히 갚아야지 하고 상환기간을 길게 잡아 놓았었다. 남편이 이것부터 빨리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여 월급이 들어오는 우선순위로 갚아 정리하였다.

신용카드도 한 장 빼고 모두 정리하였다. 대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한도를 넉넉히 불려 놓았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부터 개인대출은 받기 어렵기 때문에 신용카드라도 있지 않으면 괜히 불안했다.


 퇴사 3개월 전부턴 받은 월급들을 최대한 안 쓰고 모아 6개월 정도는 먹고살 수 있게 마련해 두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남편에게 손 벌리지 않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퇴직금은 내가 생각해 둔 사업아이템을 위한 투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지만 그때가 아니었으면 시작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나라는 상품

 평소 디자이너가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떠한 일을 했었다고 기억은 하지만 포트폴리오로 정리해 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장 이직을 하거나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내가 작업한 것들을 찾아보진 않는다. 일을 그만두면 당장 돈이 급하긴 하지만 돈보다는 나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만의 디자인 특장점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보니, 나의 장점은 편집 디자인과 삽화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만 그리고, 편집 디자인 하는 사람은 편집일만 한다. 두 가지 다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두 가지 다 최고로 잘해!' 이런 실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이걸 살려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좋겠다 싶었다. 삽화가와 편집 디자이너를 따로 구할 수 있는 큰 회사들 보단 둘 다 필요한데 한 사람 밖에 구할 수 없는 자금을 가진 작은 회사들을 타깃으로 작업물을 정리했다.


하나로는 부족해

 디자인 외주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은 많지 않다. 그것도 프리랜서로 뛰어든 지 얼마 안 된 초보 사업가에게는. 프리랜서로써 자리를 잡기 전까진 소소하게나마 들어올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20대 중후반 때부터 부업으로 해오던 핸드페인팅 작업이었다. 러시아 원목인형인 '마트료시카'에 아크릴 물감으로 페인팅을 하여 인터넷으로 취미 삼아 조금씩 판매를 했었다. 중고카페, 개인판매 플랫폼을 이용하여 팔아보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핸드메이드 마트료시카에 사업성을 느낀 후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생겼다.


 부업으로 가져오던 핸드페인팅 작업을 좀 더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간이사업자를 내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무료 소상공인 교육도 열심히 들으러 다녔다. 회사에서만 있을 땐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나와서 직접 움직여 보니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자기 확신

 프리랜서는 나 혼자서 작업부터 홍보, 기획, 회계 등등 회사에서 여러 명이 하던 일들을 나 혼자 해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이 길이 맞나 헷갈리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거기에 수입까지 없으면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무엇보다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 나의 경력과 능력들은 작고 미비했지만 나에 대한 확신들이 있었다. 난 내 작업들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특색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상품들을 계속 만들면서 팔리길 기다리는 시장의 상인처럼 진득하니 작업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당장은 안 팔릴지 몰라도 시간과 경력이 쌓이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알아봐 준다.

우리 시부모님은 예전부터 시장에서 옷수선과 옷장사 일을 하셨다. 날씨가 궂은날에도 가게를 접지 않으시고 항상 열어두셨다. 그런 날은 당연히 장사가 되지 않는다. 처음엔 왜 그러실까 하고 의아했는데, 여러 해 지켜보니 그렇게 매일 자리를 지키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필요할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피곤하다고, 사정이 있다고 문을 닫아버리면 사람들은 '여긴 매일 문을 닫는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지금 당장 외주나 주문 건이 없어도 계속 작업하며 작업물을 업로드하고 홍보하면 사람들은 내 작업물들을 보고 필요할 때 잊지 않고 찾아와 줄 것이다.

이전 03화 적은 내부와 외부 모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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