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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선 Feb 12. 2024

적은 내부와 외부 모두에 있다.

나만의 나침반이 필요해

퇴사를 마음먹은 두 달 전부터 친한 지인들에게 나의 계획과 인사들을 나눴다.


 지인 중 70%는 나의 계획을 응원한 다기보단 퇴사 자체를 부러워하는 느낌이었고, 나머지 30% 정도의 사람들이 찐 조언을 해줬다. 내 사업 아이템을 직접 보고 아쉬운 점을 가감 없이 말해주고, 그림책 관련 수업을 받았던 생생한 후기들을 알려주고 독려해 줬다. 어떤 분은 왜 아직도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그림들을 안 올렸냐며 열을 내시는 분도 계셨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포인트들을 집어주니 너무나 고마웠다. 이러한 조언들은 후에 혼자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을 잘 뒀구나, 나름 나쁘지 않은 사회생활을 했구나' 하고 기뻐할 때쯤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 나의 계획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첫 번째 시련 : 우리 엄마

 미대를 졸업하고 근 2년 만에 제대로 된 큰 회사에 들어간 나를 보며 굉장히 흐뭇해하셨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있는 큰 회사까지 가다니! 거기에 월급도 보장되어 있고 일도 적성에 맞았으니 더욱이 좋아하셨다. 그런 장녀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다니.. 크게 반대하시진 않았지만 너무나 반기지 않으셨다. 전화드릴 때마다 걱정을 동반한 우려와 잔소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계속 다니면 안 되겠니, 그만두고 자리 못 잡으면 다시 들어가면 받아주려나?, 다시 생각해 봐라, 잘 다니던 회사 나와서 뭔 고생을 하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근 1년까진 염려가 끊이지 않았고, 자리 잡기 시작한 2년까진 걱정과 한숨, 그저 업무 관련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워낙 근심과 걱정이 많으신 성격이라 예상은 했지만,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 서운했다. 무작정 일을 그만둔 것도 아니고 나만의 목표를 세워 한걸음 씩 나아가려 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가족이 반기지 않으니 잘 가다가도 한번씩 연락드리고 나면 동력을 잃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시련 : 직장상사

 팀장님께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퇴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한 달 뒤 퇴사를 희망하고, 그 이전에 가능하다면 더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한 시간가량 회유를 하던 팀장님은 갑자기 돌변하더니 불 같이 화를 내며

“갑자기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 프로젝트 들어가려고 하는데 나가는 게 말이 되냐, 그동안 업무 제대로 한건 맞느냐, 확인해 보고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법적으로 고소 가능한데 괜찮겠냐? “

와 같은 폭언과 협박, 압박들을 쏟아 냈다. 한 시간가량 폭언을 들었고 고소까지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근 3년 동안 팀의 막내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이것이구나… 갑자기 이래저래 정리됐던 팀원들도 나와 대우가 별반 다르지 않았겠다 싶어 화도 났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애원 밖에 없었다.


 “일은 제대로 해놨으니 업무 일지와 제가 공유한 작업들 보시면 됩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했고 제가 모자라니 저를 욕하세요.”라고 말씀드리며 제발 그만두게 해달라고 울며 빌었다.

상황은 가까스로 마무리되었고 한 달뒤 퇴사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후에 외주가 가능하냐는 말에 공부할 거라 시간이 안될 것 같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자존심까지 무너져가며 폭언을 들었는데 외주라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상처받는 건 한 순간일 뿐

 나의 의지로 한 선택이 가정과 직장에서 지지는커녕 비판과 우려의 대상이 되다니… 시작도 하기 전 마음이 헛헛했다. 그러나 이런 감상에 빠져 버리면 새로운 삶은 꿈도 꿀 수 없다! 굳게 먹은 마음 흔들리지 않게 다 잡았다.


엄마의 걱정은 내가 잘 해내고 수익이 꾸준히 생기면 없어질 일이다.


부모 세대에겐 프리랜서란 낯설고 위험한 존재일 뿐이니 내가 열심히 해서 그 편견을 없애드리면 된다. 그렇게 열심히 기반을 만들어 놓은 후 아이까지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반대할 부모님은 없지 않을까? 엄마는 워킹맘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신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를 못 하신 거라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했다.


직장 상사가 행했던 폭언들은 결국 퇴사하려는 나를 붙잡으려 한 과격한 표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폭풍 같던 면담이 끝난 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회사는 평화롭게 돌아갔다. 팀장님은 이전과 같이 날 대해주셨고, 퇴사 날짜가 확정된 후엔 인수인계, 남은 작업들을 충실히 이행했다. 업계가 좁은 만큼 서로 남은 감정 없이 잘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마음에 담아두면 두고두고 아픈 건 나 자신이니, 최대한 빨리 털어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태세 전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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