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동그라미를 보면 스타벅스가, 금메달을 보면 노벨상이
노벨상을 브랜드로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스웨덴 기자에게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2018년 노벨 문학상을 사라지게 만든 스웨덴 한림원의 스캔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노벨 재단 관계자의 말을 빌어 노벨상이 지닌 궁극의 브랜드 가치 extremely strong brand가 조금이라도 오염이 될까 노벨 재단이 노심초사했다고, 그러다 결국 2018년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선정 권한을 회수했다고 했다.
아하 노벨상도 브랜드구나! 그것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 강력한 브랜드.
노벨 재단도 노벨상을 브랜드로 인식하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노벨상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중이었고 평소에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참에 노벨상을 브랜드의 관점으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괴롭히는 상사 때문에 사표도 던지고 나왔겠다 시간도 많은데, 좋았어! 노벨상과 브랜드, 제대로 연구해보겠어!
어떤 상이든 받으면 좋지만, 많은 이가 그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노벨상을 꼽는다. 매년 가을을 알리는 노벨상 수상자의 발표가 시작되면 온 세계가 먼 나라 스웨덴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발표 이후의 풍경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어디나 비슷하다.
평소 과학이나 국제 뉴스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인터넷 뉴스창마다 올라오는 노벨상 소식을 한두 번은 클릭해보았을 것이다. 노벨상은 단골 화젯거리다. 노벨상 발표 주간에 식당에 가면 여기저기서 누가 무슨 연구로 상을 탔는지, 평화상은 누가 받았는지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서점에 가면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작가 책이 “노벨상 수상작”이라는 띠지를 두르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되어 있다. 하다못해 수상자 중에 누가 일본 사람이더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노벨상은 지성인의 올림픽 같은 것이다.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기록을 갱신하고 축하를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백발의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으러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누군가 끊임없는 호기심과 집념으로 평생을 바쳐 한 주제를 연구하고 그 연구가 인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는 모습은, 내가 받는 상이 아니라도 뿌듯한 감동을 준다.
1901년 첫 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한 이후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시상식을 이어오며 노벨상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누군가 “그것 노벨상 감이네!”라고 한다면 기발하거나 뛰어나거나 대단하다는 의미를 지닌 찬사다. 고유명사인 노벨상이 아예 일반 명사처럼 최고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식탁 위에 아름다운 꽃 장식과 고급스러운 식기가 놓여있으면 노벨 만찬 같다고 한다. 노벨상은 고급스럽고 독보적인, 화려하고 기품 있는 가치를 대표한다. 노벨상이라는 브랜드는 그야말로 생존하는 최고의 브랜드다.
2019년 포브스가 뽑은 최고의 브랜드는 애플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아마존을,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인터브랜드는 애플을 선정했다. 보유자산, 매출액, 시장점유율, 언론 노출과 같은 정량평가에 더해 브랜드에 대한 전 세계 소비자의 선호도와 반응을 담은 정성평가를 고유의 비율로 가점을 주어 선정한다. 노벨상은 기업이 아니므로 평가 대상이 아니지만 인지도와 충성도, 선호도와 언론 노출 등에 있어서는 어떤 브랜드에도 밀리지 않는다.
좋은 브랜드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연상 기제를 갖는다. 글자 앞에 소문자 i만 들어가도 iPhone 같은 애플의 제품이 연상된다든지 짙은 초록색 동그라미를 보면 스타벅스가 떠오른다든지 하는 것이다. 사람 얼굴이 조각된 금메달을 보면 노벨상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효과다.
거기에 가치나 메시지가 덧입혀지면 더욱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보면 애플 제품 같다고 하고, 튼튼하고 안전하면 볼보 같다고 한다. 구글은 재미있을 것 같고, 삼성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브랜드 이미지도 스캔들이나 사고 하나로 쉽게 무너진다. 그만큼 브랜드의 관리가 중요하다.
노벨상은 초기 브랜드 그대로 큰 변화 없이 100년이 넘었는데도 지루하거나 고루하지 않다.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고 견고해졌다. 누구나 아는데도 흔하지 않고, 모두가 갖고 싶어 하지만 쉽게 쓸 수 없는 브랜드다.
노벨상의 강점과 특징을 분석하기 위해 브랜드의 관점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전통, 가치, 품질, 동경, 소통, 화제성, 사람의 일곱 분야로 나눠 노벨상의 거의 모든 것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100년이 넘게 이어온 노벨상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했는지, 지키고 쌓아온 노벨상의 브랜드 관리 노하우를 정리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라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브랜드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제품이 아닌 개인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나’를 어떤 브랜드로 세상에 알릴 것인가를 긴 호흡으로 고민하며 스스로를 차분히 빚어나가다 보면 굳이 과시하거나 애써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도 뿌듯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 경험자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