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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캘거리

34세, 캐나다에서 다시 시작

by normal B

이제 캐나다에 온 지 20주 차가 되었고, 4개월이 넘었다. 지난 글(우크라이나 아줌마랑 한판 붙은 날)이 6주 전이라니…. 6주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노력했었는데 잘 안 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캔모어 생활도 내 바람⎯나는 언제나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에 캔모어 생활의 끝을 보고 싶다⎯처럼 되지 않았다.


캔모어 Millennium Park에서 보는 Three Sisters Mountains


지난 목요일에 캔모어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캘거리로 돌아왔다. 2개월 반 만이다. 왜 돌아왔냐고 물어본다면, 일단 직원 숙소에 있는 시간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캔모어는 굉장히 작은 마을이라 여유 시간에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반면에 캘거리에는 테니스를 같이 칠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캘거리에서 머물렀던 집도 좋았다. 알고 보니 나는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집에서 맛있는 걸 해 먹으며 재충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내 소셜 미디어 @eattwomeals 만 봐도 알 수 있는 건데). 그래서 캔모어에 정을 못 붙였던 것 같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더 이상 끝을 보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인생의 묘미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도전하고 부딪쳤을 뿐이다(물론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은 경계하고 싶다).


매년 7월 캘거리에서 펼쳐지는 로데오 축제인 Calgary Stampede


아무튼 캘거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일을 구한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3일이 지났을 뿐인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을 뼛속깊이 체감하고 있다. 해외생활의 어려움도 알 것 같다. 해외생활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때에 지난 글의 낯선 이의 댓글⎯낯선 타지에서 얼마나 힘드실지 가늠이 안되지만.. 파이팅입니다!⎯에서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감정적이고, 공격적이고, 근시안적이고, 편향되어 있고, 배우는 속도는 느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데 재빠르"지만 (「나만 옳다는 착각」, 크리스포터 J. 퍼거슨) 호의와 선의 역시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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