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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배를 보는 일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 05

by 노루

내 첫 회사는 가산디지털단지에 있었다. 그곳은 비행기가 공항으로 진입하는 길목인지, 비행기가 정말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건물 옥상에서 회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길을 따라 어디서 꺾어 들어온 비행기가 몇 초에 한번씩 이곳을 거쳐 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덕에 나는 비행기의 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살면서 비행기의 배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게 몇 번이나 될까. 저 하늘 높이 작게 보이는 비행기는 물론 배를 보여주고 있겠지만 배인지 등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비행기일 뿐이다. 워낙 작으니까. 그런데 그 동네에서는 고개를 들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오는 비행기의 아랫면을 고스란히 보게 되는데, 하늘이 비행기로 가득 덮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매끄럽고 널찍한 비행기의 배를 보고 있자면, 어떤 여행에서 돌아오는 고단하면서도 아쉬운 수백 명의 사람들의 기분이 상상된다.


나는 비행기가 돌고래와 닮았다고 자주 생각한다. 뾰죡한 주둥이와 유선형의 몸체가 그렇고, 비행기의 날개와 비슷한 자리에 위치한 돌고래의 지느러미가 그렇다. 그래서 비행기를 그려볼 때 돌고래를 그리고, 몸통을 직선으로 길쭉하게 그리면, 그리고 날개를 길게 뻗어주면 비행기를 그릴 수 있다. 바다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돌고래, 하늘을 여유롭게 활공하는 비행기. 그 묵직하면서도 잔잔한 움직임이 닮았다.


비행기는 저렇게 크고 무거운데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커다란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중력을 거스르는 어떤 동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그 아찔한 무중력 상태는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포탈 같기도 해서, 떠나는 비행기에는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구분하는 어떤 환기의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환기를 경험하고 돌아온, 또 다른 환기를 맞이할 착륙자들의 마음을 한 번쯤 상상해 보며 비행기의 커다란 배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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