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테마로 삼은 제철 회 전문점
일단 맛을 떠나 이렇게 예쁜 회를 본 적은 많지 않다. 비주얼만 가지고 본다면야 엄청난 내공을 가진 맛집들이 많고 많은 게 사실이지만 요란한 듯하면서도 단출한 미적 감각이 느껴지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통영집은 일반 횟집들에 비해 조금은 사악한 가격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서울 시내에서 제철 회를 먹을 수 있는 유명한 횟집들이 많이 있지만 통영집은 색다른 것들이 있다. 역삼동에 있는 바다풍경횟집도 통영에서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제공하는 맛집이니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식도락가라면 선릉역 근처에 자리 잡은 통영집 앞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딱 제철의 해산물이 준비되었다는 현수막을 보았다면 말이다. 이번엔 갔을 땐 도다리가 주력이었다. 봄 하면 도다리 아닌가?
워낙 사악한 가격의 식당들을 많이 다녀본 터라 이 정도 가격엔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봄바다 내음을 풍기는 봄 도다리를 어찌 모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맨 아래 셋팅비는 양이 적은 사람들이 함께 있거나 할 때 주문하면 된다. 샐러드바 이용권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역시 통영집 답게 통영스러운 통영 굴이 애피타이저로 제공됐다. 게다가 사시사철 맛있지만 겨우나기로 버텨낸 과메기가 미역과 함께 상 위에 올려졌다. 굴과 과메기는 추가로 제공되긴 하지만 주요리를 맛보기 위해서는 자제력을 갖고 버텨내야 한다. 하지만 딱 제철인 이 음식들을 두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봄이 되면 비브리오니 뭐니 해서 구경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헉! 소주가 사진에 나와버렸다. 하지만 어찌하겠나? 이런 음식들을 두고 소주를 부르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니다. 다시마 등 신선한 해초가 아주 그냥 사롸있다!
큼지막한 깍두기가 따라 나왔는데 이건 통영 스타일인 걸까? 세상 맛없기로 유명한 경상도 김치지만 통영집 스타일의 김치도 맛보는 것도...
사실 난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맛도 안 봤다.
큼지막한 돌그릇 위에 각기 다른 색상의 주먹 만한 동그란 돌 위에 여러 가지 회가 올려져 있다. 예쁘지 아니한가? 카메라가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비주얼이다. 요즘 보기 어려운 붕장어(아나고) 세꼬시가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제일 먼저 손이 가더라는...
횟집의 회들이야 다 거기가 거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두툼한 회의 식감이 여느 일반 횟집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주방장의 내공이 느껴지게 했다. 내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회는 종류를 불구하고 내가 직접 잡아서 먹은 것이었다. 그것도 스쿠바에 한창 심취해 있던 시절 삼십 미터 수심에서 작살로 잡아 삼투압으로 피를 빼서 가지고 나온 생선 이상 쫄깃한 식감은 없었다고 자부한다.(몇십 년 된 이야기다.) 아무튼 당시의 쫄깃한 식감을 떠올리게 했을 정도였다.
이놈의 통영김밥. 정말 이건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던 음식이다. 90년대 후반 식도락에 꽂혀 전국을 유랑하며 맛집을 찾아다니던 시절이었다. TV에서 통영김밥 맛집이 소개됐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달랑 지도책 하나만 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밤새 운전해 도착한 통영의 새벽 바다가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었다. 감히 한국의 나폴리라 불렸던 통영, 동이 트고도 한참이 지나 문을 연 그 집. 난 통영김밥을 먹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 허무했다. 이게 웬? 과연 내가 이것을 먹기 위해 서울에서 통영까지 달려왔단 말인가? 그 머나먼 곳까지 홀로 운전해 달려온 그곳이...
그 후로 통영김밥은 통영에 가서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아무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하나 집어 먹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물의 통영김밥이여!
"별 것 아닌 생선이지만 서울에선 구경하기 어렵죠!"
그렇다. 제주에서 그렇게 낚시를 다녔어도 전갱이 가지고 뭔가 해볼 생각은 못 해봤으니 말이다. 무늬오징어 미끼로나 쓰면 모를까? ^^
해초전이던가? 고소하고 맛깔난 음식이었다. 이쯤 돼서는 알코올에 혀가 무뎌진 탓인지 감이 떨어져 버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