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배우는 제주도 문화와 부동산
고씨 농부는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닌데 일약 땅부자로 도약했다. 동네에서는 물론 제주시에까지 고씨 농부 토지매도스토리가 회자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돌창고를 팔아 통장에 재워 둔 삼억 원이 불과 일주일 만에 고스란히 증발했다. 겨우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한 것이 전부였다. 어찌 된 것일까?
며칠 전 일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고씨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털털거리는 사륜구동 포터를 몰고 밭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려고 2차선 도로에 들어서는데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외숙모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창문 밖으로 목을 내밀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외숙모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고씨 농부는 외숙모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몸도 편치 않고 요즘엔 허리가 거의 구십 도에 가까워져 있다. 고씨 농부는 모퉁이에 차를 세워 두고 버스정류장으로 건너갔다. 길 건너편까지 포터의 털털거리는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외숙모의 앞에 그가 섰을 때야 인기척을 느낀 외숙모가 고개를 들어 아는 척을 했다.
“어디 가세요? 모셔다 드려요?”
고씨 농부는 외숙모의 팔을 끌었다.
“괜찮아. 그냥.”
외숙모는 별 것 아니란 듯 말했다. 그런데 고씨 농부의 시선에 외숙모의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이 들어왔다. <경매>라는 두 글자가 클로즈업되듯 눈동자에 콕 박혔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음을 인지한 그는 조심스럽게 외숙모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가볍게 떨리던 외숙모의 손이 그의 손 안에서 안정되어 갔다.
“외숙모. 그거 뭡니까? 무슨 일 있으신 거죠? 그거 줘 보세요.”
외숙모의 주름지고 푹 꺼진 눈동자엔 눈물인 듯 보이는 물방울이 그렁그렁했다. 틀니 끼운 주름진 턱 아래쪽에 미동이 있었다.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다. 외숙모에게서 건네받은 종이는 경매집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아직 날짜는 많이 남았다. 난방도 잘 안 되는 돌집에서 혼자 사는 외숙모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글도 읽고 쓸 줄 아는 분이다. 한자까지 쓸 정도로 젊은 시절 나름 인텔리라고 불려도 될 만한 학식이 있는 사람이다. 고씨 농부는 차라리 글을 모르셨으면 이런 시름이라도 덜었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대체 어쩐 일이래요. 뭐 때문에 이런 거예요?”
고씨 농부가 외숙모의 등을 살며시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게. 태곤이가. 담보를 썼대.
“무슨 담보요?”
“우리 손주가, 태곤이 아들이 아프잖아. 너도 알고 있지 않니. 불쌍해서 어쩌누……”
외숙모의 눈물이 주름진 피부를 타고 좌로 우로 흘러내렸다. 외숙모의 손주는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 고씨 농부는 외숙모의 눈물을 애써 외면하고 경매와 관련된 내용을 살폈다. 삼억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이었다. ‘이렇게 쓰라고 쓸모도 없는 돌집을 팔게 도와주셨구나. 하늘이 도운 거야’ 고씨 농부는 하늘과 조상님께 감사드렸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겠다며 외숙모를 안심시킨 후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는 곧장 태경에게 전화를 걸어 삼억 원을 송금해 주었다. 그의 토지를 매입해 준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매입한 토지는 정상적인 시세로 팔면 오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그건 태경도 알고 있었고 나중엔 고씨 농부도 알게 되었다. 태경은 외지인에게 토지가 팔려 나가는 것보다 고씨 농부가 매입해 주는 편이 안심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4.3 사건 때 돌아가셨다. 그 토지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일한 자산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에게 마음고생까지 시켜드린 것을 고씨 농부가 안아준 것만 해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고사장이 고씨 농부를 찾아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집처럼 드나들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그가 다시 찾은 것이다. 그는 그새 신수가 훤해져 있었다. 검은색 세단을 몰고 온 그는 이제 커다란 부동산 사무실도 운영하게 되었다며 자랑이다. 급상승한 제주도 부동산 시장에서 크게 한 몫 챙긴 것이다.
“형님. 제가 형님 덕에 이렇게 돈 좀 벌었습니다. 그때 형님 땅 팔고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났네요. 그래서 손님들도 많아졌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고사장은 보란 듯이 손목에 찬 금장시계를 내밀었다. 고씨 농부의 시선을 의식한 그는 곧장 시계를 풀어 고씨 농부의 손목에 채우기 시작했다.
“동생. 왜 그래? 그러지 않아도 돼.”
고씨 농부는 그의 행동이 부담스러웠지만 마음에 없지는 않았다. 고사장은 쓰윽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형님 드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게 형님 덕분인 걸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어쩐 일이야? 한동안 연락이 없길래 형님을 버린 줄 알았지.”
“설마요. 요즘 너무 바빴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돈도 벌었죠. 그나저나 형님도 바쁘신데 용건부터 말씀드릴게요. 다름이 아니고 이 동네 토지를 사고 싶어 하는 손님이 있는데 도저히 대화가 안 돼서 말이죠. 이 동네는 형님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으니까 부탁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고사장은 손님이 원한다는 토지의 위치와 평수를 설명했다. 고씨 농부 동네친구가 소유한 것이다. 같은 동네에서 같이 흙놀이 하며 자랐지만 중학교 때 육지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친구다. 어색한 동네에서 고씨 농부 덕에 쉽게 적응하여 지금은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다.
“글쎄, 그런데 그 친구가 과연 팔까 싶은데…… 이제 정착해서 농사 잘 짓고 사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연락은 해봤는데 안 판다고 해서요. 형님. 부탁 좀 드립니다.”
고사장은 고씨 농부에게 뇌물성 금장시계 하나만 남긴 채 제주시로 떠났다. 고씨 농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부탁을 받고 어쩔 줄을 몰랐다. 역지사지해서 생각해도 그 친구는 땅을 팔 것 같지 않았다. 지금껏 관리 안 되는 귤밭을 사서는 고생고생해서 가꿨다. 게다가 이제야 귤농사로 수익을 좀 낼까 하는 판이다. 곧 수확도 앞두고 있으니 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가끔 대구에서 건너오는 딸은 곧 시집을 간다고 하고 이제 달랑 남은 두 부부가 귤밭이나 가꾸며 소일하겠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씨 농부는 금장시계 유리를 엄지손가락으로 미끄러뜨렸다. 뽀득하는 소리가 새 물건임을 알려주었다. 바늘 뒤로는 조그만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ROLEX라고 쓰여 있다. 생전 처음 만난 시계는 곧 뇌물이나 마찬가지다. 고사장이 순수한 마음으로 준 게 아니란 건 세 살 아이도 알 수 있다.
제주도 교육청에서 근무하셨던 이용중님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실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십 년 넘게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책을 출판하고자 해서 소개로 만나게 된 분이다. 결국 내 업무가 바빠서 도움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원고를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 자료를 여기다 옮길 수는 없어서 아쉽다. 기억이 나는 것들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전국에서 제주도가 1위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자폐아가 제일 많은 곳이 제주라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나면 누구나 아차 싶을 것이다. 육지에서 입도하는 많은 분들은 농가주택을 선호한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고 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제주 역시 농산물을 경작하는 데 농약을 살포한다. 바람 많은 제주도의 농가주택들은 살포되는 농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공기 중에 떠다니는 농약을 마시게 된다. 지하로 침투한 농약 성분은 지하수에 섞인다.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이용중님의 책이 언젠가 출판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상당한 이슈가 되리라고 본다.
1. 서문
2. 긴급회의
- 제주의 장묘문화
- 제주신화와 오름
- 진입로를 막아 선 묘적지
- 묘적지, 무연고묘지
- 국가기관 소유의 묘적지 인수
3. 급매물
- 제주도 주택문화의 이해
- 계약서 없을 경우 계약금 반환에 대한 사례
- 문화재와 개발 인허가문제
- 제주도 토지 특성
- 농지 취득 시 알아 두어야 할 정보
4. 건축업자가 되는 길
- 괜당이란
5. 선물
- 제주도 제2공항에 대한 단상
- 김녕 도시계획 등 정보
- 예래지구 문제
6. 고뇌
- 제주도 농업
- 영어교육도시와 제주신화월드
7. 오늘은 잔금 치르는 날
- 제주은행 서울(육지)지점 정보, 주택담보 대출 시 유의해야 할 점
- 지도상 거리, 물리적 거리, 과거와 현재의 교통편
8. 푸념
- 곶자왈이란, 곶자왈 훼손에 관한 의견
9. 배 회장의 서류
- 중산간지역의 훼손, 골프장 건설로 망가진 한라산
10. 올 것이 오다
- 토지거래 시 유의할 점, 세금문제, 다운계약에 관한 지침
11. 제주도민이 되고 싶어요
- 건축물 양성화 신고 관련 내용, 법규
- 제주도 건폐율과 용적률
- 건축법상 진입로 규정
12. 제주색 건축
- 제주도 건축법 개정안
- 보전등급, 상대보전, 절대보전에 관한 법률
- 절대보전/상대보전지역
- 특화경관지구(구. 수변경관지구)
- 오름에 붙은 토지의 규제
- 동굴보호에 묶인 토지
-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
- LNG기지와 가스관 공사
- 지하수 문제
13. 실행력 없는 비전은 비극이다
14. 귀한 존재라는 걸
- 농지전용/산지전용
15. 돼지 잡는 날
- 진입로 관련법안/일반토지사용승낙서와 영구토지사용승낙서
- 제주도 일자리 문제
- 제주도 커피숍 분포
- 제주도 교육환경
- 제주살이, 한 달 살이 그리고 제주도 인구의 진실
16. 건축업자의 길
- 제주색 묻어나는 건축물들
- 제주도 행정구역 편제
17. 현실성 없는 정책도 비극이다
- 제주도 양돈과 환경오염 문제
18. ROLEX
- 제주도 농가주택과 자폐증의 상관관계
19. 제주살이
20. 올레의 비밀
21. 푸른빛 더러운 제주바다
22. 오수관 있나요?
- 오수관, 상수관 관련 내용
23. 제주도민이 되다
24.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