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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개구멍

by 루파고

길을 막는다

막으면 뚫는다

모순인가, 해킹과 보안인가

막으면 또 뚫는다


요즘엔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릴 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버스정류장이 가까운 뒷길을 넘어 담장을 넘으면

어느 날엔가 군사용 철조망이 쳐졌다

아파트 화단을 가로지르는 뒷길이 나면

울타리가 설치됐고 화단주의라는 푯말이 붙었다

학교에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길을 내주면 어떤가?

아파트 화단 사이에 산책길처럼 조성해 주면 어땠을까?


이상하게 학교 정문보다 후문이 번화하고

역 앞쪽보다 뒤쪽에 주점이 많았다

동네 뒷산엔 산악자전거를 막겠다며 말목을 박았다

제주 올레길엔 소나 말이 나올 수 없게 말목을 박았다

행정은 사람을 소나 말처럼 길들이려 한다

하지만 바른 행정은 사람들이 편한 방향으로 재설정돼야 맞지 않나?


종로엔 명문대가 행차가 많아서 피맛길이 조성됐다

큰길로 다니면 엎드리거나 허리를 구부린 채 갈 길을 못 가니

오죽하면 피맛길이 자생했을까?

그것 역시 행정의 역할로 생긴 길이 아닐 게다

예나 지금이나 행정엔 큰 발전이 없었지 싶다



요즘은 별로 보기 어렵지만 예전엔 정말 개구멍이 많았던 것 같다.

개구멍이라 하여 개가 담장 아래 흙을 파서 만든 구멍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어떠한 이유가 됐든 누군가 필요에 의해 담장 아래 구멍을 만들거나 울타리를 뜯어내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불법적인 게 아니라면 길을 내주고, 제도를 풀어주고 방법을 만들어주는 행정이 진짜 행정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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