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봤던 아동용 만화에 이런 물음이 있었다. ‘2월 29일에 태어난 사람은 4년에 한 번만 생일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아무래도 2월 29일에 태어난 어린이가 보낸 궁금증일 테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럴듯한 의문이다. 아니면 2월 29일에 태어난 아이를 가진 부모일 수도 있겠다. 만약 서른여섯 해를 살았다 치면 나이는 9살이라는 건데,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만화에서는 2월 28일에 생일잔치를 하면 된다는 간단한 답을 해주었다. 사실 2월 29일에 대한 괴담은 따로 있다. 군 복무기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군 복무기간은 ‘xxx일’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다. ‘xx개월 xx일’ 이렇게 따진다. 그래서 2월 29일이 있는 해가 오면 2월 전역자 말고는 군 생활을 하루 더 하게 된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지. 그 하루 내무실의 분위기는 아주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경험담이다. 달력을 보니 올해 2월은 29일까지 있다. 그걸 보니 생각났다. 우리 국군 파이팅.
이집트인들이 1년의 기준으로 사용하던 오벨리스크(프랑스 콩코르드 광장 소재)
달력이 처음 만들어진 곳은 고대 이집트로 추정된다.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는 때를 제대로 예측해야 농경을 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하여 측량법, 토목술, 천문학이 발달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역법도 출현했다. 이집트인들은 1년을 세 개의 때로 나누었다. 나일강이 흘러넘치는 시기를 ‘아케트(Akhet, 6월 15일~10월 15일 경)’, 씨를 뿌리는 시기를 ‘페레트(Peret, 10월 15일~2월 15일 경)’, 그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쉐무(Shemu, 2월 15일~6월 15경)’로 분류했다. 한 시기는 네 달씩이었고 1년은 12달, 1주는 10일이었다. 그리고 5일을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호루스(Horus)’, ‘네프티스(Nephthys)’, ‘세트(Seth)’ 등 다섯 신의 생일이라 하여 축제를 벌였다. 이렇게 되면 1년이 365일이 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오늘날 태양년의 척도로 1년은 365.2422일이다. 이집트 인들은 오벨리스크의 첨탑과 시리우스 별자리가 겹치는 때, 즉 항성년(각주:항성년(sidereal year)은 지구의 공전 때문에 멀리 있는 항성(혹은 별자리)을 기준으로 태양이 천구 상에서 한 바퀴 연주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의 기간을 365.25일쯤으로 계산했다. 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집트 인들은 1년을 딱 365일로 세었다. 윤년을 딱히 집어넣지는 않고, 농경과 축제날을 살짝 변경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오차가 천년 단위로 쌓이자 나중에는 실제 절기와 달력상 절기는 전혀 상관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달력이 제대로 맞으려면 약 1440년을 기다려야 하는 웃지도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기원전 3세기 그리스 계열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각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로스 사후 이집트에 세운 그리스 계열 왕조)가 들어서서야 윤년의 개념을 사용한다.
윤년을 만든 누마 폼필리우스상
로마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초기 로마의 달력은 3월부터 12월까지만 세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달은 필요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1년이 10개월 304일이었다. 완전 이건 달력도 아니었다. 이후 로마의 두 번째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 BC 753~ BC 673)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BC 710년 달력 개혁을 단행하여 1년을 355일로 만든다. 1월과 2월, 두 달을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오차를 보완하기 위해 382일짜리 윤년을 도입한다. 불만은 여전했다. 관리의 임기도 문제였다. ‘쟤는 집정관을 382일 했는데, 나는 왜 355일 밖에 못하냐’ 이런 말들이 세어 나왔다. 윤년이 4년마다 한번씩 규칙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고 최고제사장이 올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때서야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 BC 44)는 2월을 29일로 하루 늘린 율리우스력이라는 신개념 달력을 만들어 로마제국 전역에 보급한다. 1년을 365.25일로 하고 4년을 묶어 3년은 365일, 1년은 366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윤년은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로 삼았다. 다만 율리우스력이 보급될 때는 실제 계절과 달력이 3개월 차이가 나고 있는 바람에 새 달력이 공표된 BC 46년은 445일이나 되었다. 그래서 이 BC 46년은 ‘혼란스러운 해(annus confusionis)’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아무튼 보통 고대사회에서 역법과 권력은 동일 시 되어왔다. 통일된 기준을 정하는 권력과 함께 세금이 직결되어 있어서 그랬다. 그래서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사용되던 달력이 통일되었다는 것은 로마제국이라는 강력한 힘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율리우스력도 문제는 있었다.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정했다. 하지만 실제 1태양년은 365.24219879일이므로 1년에 0.00780121일(약 11분 14초)의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128년이 지나면 달력이 실제보다 하루 앞서게 되었고, 16세기가 되자 열흘의 오차가 발생했다. 이는 당시 교회 세계에 중요한 문제였다. 서기 325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처음으로 열렸으며 삼위일체론이 공인된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에서 부활절의 기준이 정해졌었다. 춘분이 지난 뒤, 보름달이 뜬 이후의 첫 번째 일요일이 부활절이 되었다. 그러나 16세기가 되자 실제 춘분과 달력 춘분은 열흘의 차이가 나버린다. 그러자 부활절을 어느 날에 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당시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 1502~1585)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1582년 10월 4일의 다음날을 10월 15일로 해버린다. 열흘을 교황의 권위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끝자리가 00으로 끝나는 해는 평년으로 하되 그중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하는 새 규칙을 제안한다. 이렇게 되면 추후 400년 동안 율리우스력으로는 윤년이 100회인데 반면에 그레고리우스력으로는 97회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오차를 11분 14초에서 26초로 줄여 3391년이 지나야 하루의 오차가 나타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탁월한 조정도 종교적 신념을 이기지는 못했다. 가톨릭 국가들은 이를 바로 받아들인 반면에 개신교 국가들(영국,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계속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결국 세금 문제가 골치 아팠는지 200여년이 지난 18세기 중후반이 되어서야 그레고리우스력을 받아들인다.
달력을 재정비한 그레고리우스 13세
한자문화권에서는 윤달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이런 오차를 해결하였다. 달의 주기를 사용하는 태음력을 사용하면 1년이 약 354.36일 정도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태양이 황도를 운행하는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24절기를 만들어냈다. 또 2~3년에 한 번씩 한 달을 더 넣는 윤달의 개념을 사용하여 태양력과의 주기를 맞추었다. 이렇게 되면 19년에 7번 윤달이 들어가며, 태양력 19년과 태음력 19년(235 삭망월)의 기간이 맞추어지게 된다. 조상들은 윤달을 ‘공달’이나 ‘썩은 달’이라 불렀다. 또 신들이 윤달에는 땅에 대한 감시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그간 하지 않았던 이사나 이장(移葬), 수의를 만들고는 했다.
올해는 2월이 29일이다. 재미 삼아 이야기하면 2월이 29일인 해에는 올림픽이 개최되고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이 열린다. 무엇보다 하루를 더 얻은 날인 것이 더 즐거운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날은 보너스라 생각하고 자신보다는 주변 이웃이나 가족을 위해 사용하는 하루가 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