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 15일 월요일 오후
1994년 8월 15일 월요일 오후 / 나주, 세희의 고향
세희의 할머니 만례씨집.
“세희야! 세희야!!!!!!!”
"할머이, 먼일있능가?"
“세희야, 사님이성님 여그 와있냐? 밭에도 읍써블고 집에도 읍어블어야.”
세희가 현관문을 열고 만례씨에게 달려 나간다.
“먼 소리여, 사님이할매 혼자서는 밭허고 할머이집 아니믄 어디 안간담서.”
“그랑깨말이여, 이것이 먼일이다냐. 오메! 어찌야쓰까이.”
세희를 따라 리아와 리오도 따라 나온다. 쭈뼛쭈뼛 서 있는 리아와 리오를 번갈아 보며 만례씨가 말문을 연다.
"느그들이 세윤이랑 세준이냐?"
"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랴, 세세헌 인사는 나코 허고 느그 할매 모냐 찾아야 쓰겄시야."
그때 세희가 만례씨에게 사님이할머니가 간 곳을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할머이, 사님이할매 울 아빠 뫼똥에 가븐거 아니여? 쩐번에도 할머이랑 같이 같담서?"
"근디 이때까정은 낸둥 내랑 같이 갔었는디야."
"그랴도 밭 말고는 거그를 질로 마이 가븟응께 한 번 가보장깨."
만례씨는 거실에 있는 음식을 찬합에 넣어 보자기로 싸더니, 창고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나온다.
"할머이, 우리도 같이 가믄 안됭가?"
세희가 만례씨에게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자 리아와 리오도 만례씨를 보며 따라가고 싶은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
"느그들 자전거 탈 중 아냐잉?"
"저 자전거 잘 타요."
"그라믄 자전거 뒤에다가 동상 태울 수 있겄냐잉?"
"동상이요?"
세희가 리오에게 동상이 동생이라고 알려준다. 처음에는 만례씨 뒤에 세희가 타려고 했는데, 가벼운 세희가 리오 자전거 뒤에 타기로 한다. 만례씨와 세희, 리오, 리아는 자전거를 타고 세희아빠의 산소로 향한다.
"세준이오빠, 자전거 엄청 잘 타네."
"아빠한테 요새 아니... 예전에 배웠어."
금황면사무소를 지나 경로당을 지나 논둑길을 지난다. 금황국민학교를 지나 문구사를 지나 한참을 더 가서 산소에 도착한다. 사님이할머니는 세희아빠 산소 앞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책보를 깔고 낮잠을 자려고 이제 막 누웠다가 만례씨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나주, 금황면 세희아빠의 산소.
"성님! 역서 머 헌다요? 나가 성님땀시 을매나 놀래븐줄 아요? 어디를 가믄 간다고 말을 혀야 헐 것 아니요."
"오메, 우리 세윤이랑 세준이 와브렀냐? 오늘 니기 애비 가븐날이여갖고야 니기 애비 뫼똥에 왔시야."
"아따! 성님, 여그는 성원이 뫼똥이 아니고 성민이 뫼똥이라고 나가 백 번 천 번 말해븟구만."
사님이할머니는 세희아빠 묘를 세준아빠 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계속 알려드려도 최근 들어 치매가 심해져서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
"이왕 와브렀응께, 쩌짝 정자에서 손자들 허고 밥이나 묵읍시다."
만례씨는 자전거 바구니에서 가져온 찬합도시락을 꺼낸다. 리아는 꼬치 전이 입에 맞았는지 4개째 연달아서 먹고 있다. 리아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만례씨와 사님이할머니가 입이 귀에 걸려서 흐뭇하게 바라본다.
"세윤이 니는 그나 잘 묵는다이. 세준이 니도 싸게 싸게 마이 묵어라이."
"그랑께요, 성님 아따 세윤이 잘 묵는 거 본께 내도 겁나게 오져브요."
사님이할머니가 신이 나서 이 음식 저 음식을 세윤이와 세준이 앞으로 가까이 밀어준다. 세희는 고기전 하나도 채 먹지 못하고 금세 배가 부른 지 자전거만 쳐다보고 있다. 리아가 세희에게 말을 붙인다.
"세희야! 너 자전거 탈 줄 알아?"
"아니, 아직 자전거 혼자서 안 타봤어."
"나도 아직 한 번도 안 타봤는데 올 때 보니깐 너희 할머니 자전거 진짜 잘 타시던데?"
"사님이할머니도 자전거 엄청 잘타."
"그래? 나는 사실 자전거 타는 게 무서워."
"언니 사실 나도 무서워서 나중에 배운다고 했어. 할머니가 여러 번 가르쳐준다고 했었거든."
리오가 옆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자 리아가 옆에서 바람을 잡는다.
"언니...... 나 그럼 한 번 배워 볼까? 언니도 이참에 같이 배우자."
"세윤이 니도 이참에 한 번 배워블믄 쓰겄고만."
만례씨가 리아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금황국민학교 운동장으로 자전거를 타고 줄지어 간다. 만례씨는 리아를 태우고, 그다음에는 사님이할머니, 그 뒤를 이어 리오가 세희를 태우고 금황국민학교로 간다.
나주, 금황면 금황국민학교 운동장.
“세희야, 처음에는 내가 뒤에서 잡아줄게. 두 발을 페달에 올리고 균형부터 잡아봐.”
“오빠, 나 무서워. 절대 넘어질 것 같애.”
“괜찮아, 내가 꽉 잡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앞만 봐.”
“발이 미끄러질 것 같아.”
“발끝으로 돌린다고 생각 말고, 발바닥 중간으로 밟으면서 돌려봐.”
“절대 손 놓으면 안돼. 알았지?”
세희의 자전거는 점점 더 멀리 나아갔다. 운동장 반대편에서는 리아가 환호성을 지르며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오빠, 세윤이 언니 벌써 혼자 타고 있어! 언니 엄청 빨리 배우네.”
“너희 할머니가 잘 가르쳐주셔서 그런가 봐.”
“나도 다시 해볼게. 이번엔 더 멀리 간다!”
“그래, 이번엔 방향도 살짝 바꿔보자.”
세희는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크게 웃었다.
“오빠, 나 이제 제일 길게 탔어!”
“세희야, 잘한다. 손 놔봐도 되겠어?”
“벌써? 그래, 해봐!”
세희가 발로 땅을 살짝 밀어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자, 리오가 뒤따라 달리며 외쳤다.
“세희야, 사실 처음부터 손 안 잡고 있었어!”
“진짜? 나 혼자 탔어?”
“그래! 이제 너 완전히 혼자서도 탈 수 있어.”
세희는 날아오를 듯한 기쁨에 얼굴이 환해졌다.
즐거운 자전거 강습이 끝난 뒤, 다시 줄지어 자전거를 타고 만례씨 집으로 향한다.
앞에는 만례씨가 세희를 태우고, 그 뒤로 리오, 그리고 사님이할머니가 리아를 태우고 천천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