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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Apr 27. 2024

오래오래 나를 지키면서 회사 생활을 유지하는 법

SCENE #25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입사할 때부터 그렇게 지긋지긋해하던 이 팀장이 회사를 그만 둘 줄이야. 일할 때는 정년까지 회사에 충성하고 지낼 것처럼 그러더니 이게 웬일이래. 아직 마흔일곱인가 오십도 안된 나이에 이직도 아니고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지낸다고 한다.


"민지 씨. 오늘이 마지막이네. 그동안 고마웠어. 잘 지내고."

"팀장님. 진짜 떠나시는 거예요? 퇴직하고 나시면 뭐 하고 지내시려고요.?"

"그러게. 나도 2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니 마음이 복잡하네. 그래도 나는 나답게 살아 보려고."

"팀장님 답게요? 그동안 회사에서 잘해 오셨잖아요. 조금만 더 하시면 임원 진급도 하시고. 아직 정년까지 한참 남았는데..."

"그렇지? 사실 나도 두렵긴 해. 그래도 마음은 참 편하네. 요즘 우리 회사 분위기가 예전 같지는 않잖아? 내가 민지 씨 시절에는 이것저것 해 봐도 괜찮고 지지해 주던 선배님들 덕분에 재밌었는데, 나는 민지 씨한테 그런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이. 이 팀장이 왜 이러지. 낯 간지럽게. 그래도 이십 년 근무한 짬밥으로 이런저런 글도 쓰고 책도 낼 건가 보다. 이십 년 근무하던 곳을 떠나면 기분이 어떨까? 나는 이십 년이나 붙어 있을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래오래 나를 지키면서 회사를 다닌 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동료들과 함께 한 마지막 벚꽃 사진 이벤트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조심해야겠습니다. 


네. 제가 이번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정말 글처럼 퇴사하게 될 줄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글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고 그렇게 쓰는 대로 마음의 길이 나나 봅니다. 이 연재를 마무리하는 꽃피는 4월에 저는 20여 년을 근무하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입으로 처음 들어온 회사에서 떠나는 심정은 참 복잡하더군요. 그동안 인연을 맺고 신세를 졌던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제가 쓴 책도 한 권씩 나누어 드렸습니다.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회사를 떠나서 생활이 가능한지 걱정도 해 주시고,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 긴 시간들 속에서 많은 동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습니다. 어려울 때 떠나는 동료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은 참 고통스러웠지만, 지나고 나면 자리는 금세 또 메워졌습니다. 그걸 보면서 아, 일이란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처럼 만나고 다하면 헤어지는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일을 소유물이 아니라 인연이라고 여기고 나니까 익숙해지면 얼른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그래서 후배들이 더 잘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면 더 재밌고 새로운 일들에 도전할 기회가 따라왔습니다. 그 덕에 한 회사에 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사비로 마련해 준 기념패 - 너무 고마웠습니다. 


나만의 삶의 태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지원도 해고, 프랑스나 중국에 파견을 가기도 했죠. 자동차를 끌고 전 세계 오지는 다 가보고, 소프트웨어나 탄소 중립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도전해 봤습니다. 그런 도전에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결과가 나빠도 그대로 받아서 같이 답을 찾아 주었던 선배님들이 계셨고, 말도 안 되는 지시가 오면 해야 한다고 하는 지시와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수준과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열린 마음으로 토론했던 기업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저는 그 긴 시간을 지난 이후에도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팀장이 되니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하게 될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그리고 회사의 상황이 좋을 때는 새로운 기회를 나누어 줄 수 있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오히려 통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습니다. 이런저런 일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자신의 자리를 욕심내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결정권은 조금씩 더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해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 퇴사 소식을 메일을 전해 들은 프랑스에서부터 같이 일했던 프랑스인 동료가 깜짝 놀랐다면서 혹시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설명해 줄 수 있냐는 메일에 답을 하면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As I mentioned, I am proud of what we have done together in Renault. And I will keep myself as you remember. Keep learning, Work hard, Help people, Find solution.  



천상병 시인이 귀천이라는 시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고 이야기했듯이 회사도 여러분의 전성기를 보내는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러니 언젠가 떠나는 날, 돌아보며 뿌듯하고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려면, 좋은 선배와 문화를 찾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도전하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시길... 일도 지위도 (연봉도) 결국 바람처럼 지나가서, 떠나서 한발 물러나서 보면 남는 건 "그동안 보낸 시간들이 쌓아준 힘으로 두 발로 세상을 디디고 서 있는 나"만 있습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TIPs for MZ

일과 지위보다 그걸 대하는 나만의 삶의 태도를 단련하자. 

나의 기질과 잘 맞는 선배와 기업 문화가 오래오래 회사를 다니는데 중요하다. 

시간의 힘을 믿자. 충실히 보낸 시간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6163973 

의도하지 않았지만 퇴사를 앞두고 두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다 작가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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