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일
2020년 6월 25일부터 2023년 10월 28일까지, 나에게는 작업실이 하나 있었다. 작업실의 이름은 '미하다'였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스물한 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어서 다양한 일을 배우고 다녔다. 자신의 공간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자기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작고 소중한 월급을 쪼개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으며 회사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취향을 찾아 경험을 쌓았다. 마음 가는 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지독하게 절실했다. 나의 일을 찾고 싶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 회사와 회사를 옮기는 사이에 공백을 두고 나의 일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실패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험하며 20대를 보냈다. 만약 그 실험들 중 하나라도 성공했다면 '작업실 미하다'는 없었겠지. 작업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어.'의 결과물이다. 내가 만든 나의 일은 모두 실패했다. 취미를 일로 만들어 봤지만 상상한 것과 너무 달랐다. 몸은 당연히 힘들고 좋아하는 일에 마음까지 쓰느라 더 힘들었다. '좋아하는 일은 그저 취미로 곁에 두자. 그게 더 오래 즐기는 방법일 거야.'라고 마음을 정리하니까 편했다. 실패 끝의 합리화였다. 나를 속이는 건 쉬우니까.
대가는 혹독했다. 내가 나를 속인 대가, 그건 공황장애였다. 무서웠다. 뭐가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2021년 4월 1일이었다.
- 예고 없이 찾아온 공황장애 중에서 -
'작업실 미하다'가 있을 때 가장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응원하는 친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호주에서 목숨을 잃었고, 그 사건은 신호탄이 되어 모든 게 터져버렸다. 외줄 타기 하듯 하루를 버텼고, 퇴근하면 가면을 벗고 작업실로 달려가서 매일 울었다. 작업실은 유일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었다.
실패의 결과물이자 동굴이었고, 가장 어두운 내면을 알고 있는 작업실과 작별하던 날, 허허 웃으며 아람님과 작업실을 정리했다. 시원섭섭한 정도일 줄 알았는데 밤에 혼자가 되자 허탈하고 허무하고 허전해서 엉엉 울다 지쳐 잠들었다. 여전히 작업실 없는 삶은 손가락 하나 없이 살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우연히 전시를 보러 갔고, 같은 동네에서 작업실을 꾸린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찍은 사진 속에 나의 작업실이 있었고, 작업실 동네가 있었다. 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그녀와 나는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각자의 공간을 창밖으로 염탐하던 사이였다. 반가웠고, 애틋했다. 나는 왜 더 해내지 못했을까, 이루지 못했을까, 더 버텨보기라고 할 것을,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의 나는 작업실 덕분에 살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건 작업실 뿐이었다. 약하고 아픈 나를 품어준 공간으로 작업실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3년 3개월, 작업실 미하다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실패했다. 좋아하는 일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돈 버는 일도 될 수 없다고, 나는 그들처럼 살 수 없다고 마침표를 찍었는데. 분명 찍었는데.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을테니까. 나는 지금 새로운 실패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