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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Feb 28. 2020

아빠 육아를 위한 엄마의 역할

"수건 좀 갖다 줄래?"

남편의 부름에 얼른 아이 수건을 챙겨 욕실로 갔다. 아이에게 한번 웃어 보이고 수건은 옆에 걸어두었다. 돌아서 나오려다 손수건을 발견했다. 아이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닦는 손수건이 세면대 언저리에 놓여있었다.

세면대는 원래 세수나 양치를 하는 곳이지만,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엉덩이를 씻기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세면대 언저리에는 기저귀가 자주 놓인다. 엉덩이를 씻기다 무언가가 튀었을지도 모르는 곳이다. 어쩌면 기저귀에 묻어있던 무언가와 맞닿았었을지도.

남편이 목욕을 마치고 문제의 손수건을 집어 든 순간, 그의 손에 브레이크를 걸 의도로 성급히 남편을 불렀다.

"오빠......"

남편이 나를 돌아보았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하, 남편의 손은 이미... 문제의 손수건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고 있었다. 아이는 손수건이 얼굴 위에 덮였다 치워졌다 하는 상황이 재미난 지 깔깔 웃고 있다.


우리 집 육아 업무분장은 아래와 같다.

- 아빠 : 바닥청소, 목욕, 손발톱 정리

- 엄마 : 먹이기, 재우기, 기저귀 갈기

육아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야 워낙 많지만 손이 많이 가는 업무(?) 몇이라도 분장을 해두니 편하다. 남편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저녁시간뿐이지만 그 시간에 아이를 씻기며 낮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육아 참여도가 낮지만 미안함이나 육아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을 덜 받을 수 있다.

내 입장에서도 업무분장은 만족스럽다. 남편은 이전에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육아를 본업으로 둔 내게는 24시간 막중한 책임감이 따랐다. 역할을 구분한 후로는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시간 동안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육아는 회사 일처럼 '저건 네 일, 이건 내 일' 선을 그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회사 일이야 네가 잘못한 일은 네가 책임지면 그만, 이지만 육아는 상대방의 행동이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아이에게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분장 후에도 괜히 눈을 가늘게 뜨고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편이지만 하는 행동은 참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았다. 소파 아래로 굴러들어갔던 장난감을 뭐든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 손에 그대로 쥐여주기도 하고, 본인 입에 닿았던 스푼으로 이유식을 떠먹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라면...'으로 시작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세면대 언저리에 놓인 손수건'도 그중 하나였다. '나라면 수건걸이에 걸어두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은 결국 다시 아래로 슝 미끄러졌다. 내가 하는 일에 남편이 가타부타 말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내 방식이 곧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편은 내 행동을 보고 '유난스럽다'는 말을 목구멍까지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도 육아는 처음인걸 뭐. 눈을 질끈 감고, 욕실 문을 닫았다.

'그래. 남의 똥도 아니고 니 똥인데 별일이야 있겠니......'


아이는 부부가 함께 키운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건 서로 의심할바 없다. 그렇다면 그냥 맡겨도 되지 않을까.

엄마들은 육아에 있어서 아빠들보다 우위를 가지는 것처럼 평가된다. '아빠에게 아이를 맡겼더니 생긴 일'이라는 제목으로 종종 눈에 띄는 게시물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 같다. 내용을 보면 주로 아빠의 미숙한 육아로 인해 벌어진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다. 예를 들면 아이에게 불량식품을 왕창 먹이거나 옷을 마구잡이로 입히거나 하는.

웃자고 올린 게시물이니 한바탕 웃고 넘기면 다행이지만, 그런 상황을 보고 '애는 역시 엄마가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라고 달랐을까? 만약 남편이 주로 육아를 맡고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면 우리 집에서는 '엄마에게 아이를 맡겼더니 생긴 일'이 탄생했을 거다. 결국 육아의 우위는 꾸준히 육아에 참여하는 부모가 가지는 게 아닐까.


우리 집 버전 '아빠에게 아이를 맡겼더니 생길 일'. 뭐 육아에 정답이란 없는 거니까... 앞으로는 더 성분 좋은 로션을 사는 걸로.


회사 규정집에는 '재량'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담당자가 본인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신혼 때부터 우리는 서로의 재량을 존중했다. 방청소와 욕실 청소, 요리와 설거지, 흰 빨래와 색깔 빨래 등으로 나누어 집안일을 했고, 상대방의 일처리에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둘 다 완벽한 집안일을 하겠다는 욕심이 없었고, 상대에 대한 기대도 적었기 때문이다.

육아라고 다를까. 다르긴 하지, 만 그래도 서로 믿어보기로. 믿을 수밖에. 손들고 독박 육아를 할 게 아니라면.


"아까 왜 불렀어?"

아이 목욕을 마치고 나온 남편이 묻는다.

"...... 아, 아무 일도 아니야. 힘들지. 로션은 같이 바르자."

얼굴은 땀으로, 몸은 아이 몸에서 옮겨온 물기로 흠뻑 젖은 채 남편이 웃는다.

"고마워. 도와줘서."

'도와준다'는 말은 '육아'하는 부부들에게는 금지어다. 아이는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인데 '도와준다'는 말은 상대방의 일에 손을 보탠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도와준다'는 말을 꽤 자주 쓴다. 남편이 아이 목욕을 시킬 때는 내가 '도와주고', 내게 사정이 있어 남편이 대신 재워주는 날에는 남편이 나를 '도와주는' 거다. 상대방의 도움을 우리는 고마워한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남편이 그와 똑같은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는 상상. 끔찍하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내가 나와 똑같은 남편을 만나 아이를 키우는 상상. 이건 더 끔찍하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 둘을 조금씩 닮은 아이는 자라면서 우리의 취향과 습관들도 골고루 닮겠지?

알아서 좋은 것만 잘 닮으렴. 엄마, 아빠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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