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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백련강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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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Apr 11. 2023

월식

[산문] 백련강 - No. 3

    먹물을 머금은 듯한 구름 사이로 창백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두툼한 패딩을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 탓에 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인기척이 없는 골목길에는 스산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골목길 곳곳에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퀴퀴한 악취가 얼어붙은 코끝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로 약속 장소를 향해 걸었다. 김은 벌써 와서 구석에 포획용 케이지를 내팽개쳐 두고는 연초를 빼어 물고 있었다. 


    미연 씨 진통 시작했다며. 안 가봐도 괜찮겠어?


    김이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병원비 맞춰서 납부하려면 이럴 시간도 없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나는 퉁명스럽게 답하며 새빨간 목장갑 위로 두꺼운 공업용 장갑을 꼈다. 김은 알았다는 듯이 케이지를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희미하게 피어오른 달빛이 골목길에 부서지듯 쏟아졌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미리 봐둔 주택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불이 꺼진 주택에 두 마리의 개만 남아서 지키고 있는 집이었다. 나는 주택을 빤히 쳐다봤다. 문득,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나를 맞이하는 반지하가 떠올랐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월식이 있다더니 정말로 달이 어두운 그림자에 파묻히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담장을 올랐다. 뒤따라 올라온 김이 케이지를 담장 너머로 툭 던졌다. 컹. 컹. 별안간 마당에 늘어져 있던 개 한 마리가 일어나 짖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개를 훔치는 일을 한 건 아니었다. 덩치 큰 개를 공혈견 센터로 보내면 일당을 받았다. 살집이 많고 영양 상태가 좋을수록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돈이 필요했다. 발육이 좋고 순한 개일수록 값어치가 높았다. 개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세상에 널린 개들이 전부 돈처럼 보였다. 언제부턴가 훔친다는 죄책감이 점점 무뎌졌다. 

    그때 죽은 새처럼 몸을 웅크린 채 얌전히 묶여 있는 다른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힘이 쭉 빠진 채 늘어져 있는 다리. 입가 주변에 피어오르는 희뿌연 입김. 개의 배 부분은 불툭 튀어나와 있었다. 새끼를 밴 놈이었다. 임신한 개를 보고 있으니 병원에 있을 미연이 떠올랐다.


    쟤는 그냥 두고 가면 안 될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이 어깨를 밀쳤다.


    미쳤어? 너 병원비 안 필요해? 


    나는 김의 성난 목소리에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준비해 온 케이지 안으로 개를 천천히 밀었다. 개가 얌전히 밀려 들어가지 않았다. 최대한 힘을 끌어내 버티는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개 등에 올라타 몸통을 잡고 케이지 안쪽으로 밀었다. 순간 개가 거칠게 몸을 뒤틀었다. 나는 균형이 무너진 채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오른쪽 다리에서 시큰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일어섰다. 오른쪽 발목을 감싼 양말을 걷어보니, 복사뼈 부분이 파랗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


    나는 읊조리며 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마에서 끈적한 땀이 흘렀다.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스칠 때마다 뼈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면서 개를 가둔 케이지를 들었다. 등줄기에 땀이 식어 온몸이 어는 것처럼 떨려왔다. 


    그 녀석 오줌이라도 지렸나 본데?


    김이 내가 든 케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케이지에서 끈적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오줌 따위가 아니었다. 케이지에서 비릿한 냄새가 잔뜩 풍겼다. 진득한 액체와 선혈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액체를 만져봤다. 양수였다. 나는 멍하니 개를 바라봤다. 개의 튀어나온 배가 눈에 걸렸다.

    차는 한밤중의 산길을 빠르게 올랐다. 인적이 드문 외딴곳에 갈수록 덜컹거림이 심해졌다. 트렁크에서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들썩일 때 내는 소리보다 개의 신음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속에 묵직한 것이 얹힌 듯이 답답했다. 병원에 있는 미연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자구. 다리도 뻐근하고, 어쩐지 쌔한 느낌이 들어. 미연이한테도 가 보는 게 좋을 거 같고. 


    내가 말하자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쾅. 범퍼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이 들며 굉음이 들렸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차에서 걸어 나왔다. 시커먼 고양이 한 마리가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고양이 근처로 핏자국이 점점 넓어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재수가 좀 먹었나. 자네 오늘 일진이 왜 그래. 


    김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때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병원이었다.


    보호자분.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한 상….


    나는 간호사의 말에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아기는 의사가 꺼내기 전부터 죽어 있었다고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달이 넓은 하늘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빛 한 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트렁크에 있는 개들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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