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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아내의 편지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7)

by 김정훈

아내는 무척이나 겁이 많다.

조심스럽고 주위를 의식하는 편이다.


그런 사람이 아이와 나를 두고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혼자 지내야 했던

그 힘든 시간들...


그때 당신이 건넨 이 편지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나도 그때는 힘들었지만

당신이 전 존재로 내게 기대 올 때...

버겁지만 행복했던 그 날이 생각난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 일곱 번 째 이야기 : 그때 그 시절 아내의 편지


오늘은 평소보다 세 시간이나 일찍 아침을 열었다.

새벽임에도 차갑지 않은 공기덕에 낯설움은 없다.


아직 어둠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한적해서 좋다.


하룻밤의 무서움 속에서

별 탈 없이 잠을 자고 깨어난 지금,

나는 안도의 숨을 쉰다.

...

하늘 아래 늘 같은 집, 같은 길, 같은 버스,

같은 일 그리고 같은 시간들이지만

한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

내게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그 한 사람이 없으면 하늘도 낯설고

아침, 저녁으로 다니던 길도, 집도 낯설다.


퇴근길에 차를 기다리기 위해 서있다 보면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거리에

혼자 서있는 듯한

착각 속에 종종 빠지게 되고,

그럴 때의 그 막막함과 두려움 때문에

온몸이 오싹거린다.

창문도, 대문도 완벽하게 잠궜나

다섯 번 이상은 확인하고,

보일러실 작은 창문에 보호창살이 없음이

불안해서 별 궁리를 다 해본다.

사람이 있는 것처럼

화장실과 주방에 밤새 불을 켜 놓고..

그것도 못 미더워 방문을 또 잠그고,

TV의 떠들썩한 소리가 혼자 있음을

감출 수 있기를 바라며...

잠을 청하지만

그래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해 뒤척이다

결국 벌떡 일어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하자고 다짐하며

잠긴 문들을 흔들어 본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무엇인가가 떠올라

빗자루를 머리맡에 두고야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내일은 방문 안쪽으로
자물쇠 하나를 꼭 걸어야지...

다짐하면서...

테잎 속의 목사님 목소리가

겨우 나를 진정시키며 잠 속으로 인도한다.

...

그러나 한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금방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따뜻해진다.


하늘도, 집도, 거리도

원래의 모습대로 편안하고 더 이상 무섭지 않다.


한 사람이 오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나는 곧장 해방이 된다.


문의 잠김 상태를 여러 번 확인 안 해도 되고,

창문을 열어 놓고 시원하게 잘 수도 있다.

그렇게 내 귀를 기분 나쁘게 자극했던

작은 소리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은 나의 모든 근심과 두려움과 불안을

한꺼번에 사라지게 한다.


하늘보다도 넓고,

바다보다도 깊은 나의 의심과 무서움을

한 번에 삼켜버리는 사람.

온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이나

내게는 크고 든든하다.

...

오후에 그 사람이 온다고 약속했다.

나는 얼른 그 사람 품에 안기고 싶다.


우주보다도 넓고,

갓 만들어진 양모이불 보다도 포근하며,

공기처럼 부드러운 그의 가슴에 말이다.


내 귓가에 스미는 그의 따뜻한 호흡을 느끼며

그렇게 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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