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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나 Feb 26. 2021

내가 그 회사를 10일 만에 뛰쳐나온 이유

혹시 일진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비상식적인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빨리 발을 빼야 할까? 아니면 조금만 더 견뎌볼까? 2020년 겨울, 나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 10일 만에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전 회사를 퇴사한 지 5개월,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많이 만들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회사라 기대가 매우 컸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회사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대체로 사람들이 젊었고,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비록 원래 다니던 회사보다 작은 곳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만들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면접을 보고 그날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솔직히 설렜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회사는 무척 바빴다. 편집자 한 사람이 한 달에 두 권 정도를 '쳐내야'하는 시스템인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반 단행본을 한 달에 두 권이라니. 그래도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작가님들과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들도 모두 온화하고 좋은 것 같았다. 팀장님은 너무 부담이 되면 자기가 일을 더 할 테니 나는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주셨다. 음, 이 정도면 다닐 만한 회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멀어서 출퇴근이 많이 힘들긴 했지만 첫 출근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문제는 둘째 날부터 시작되었다.


"하, X발. 어제도 야근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던 젊은 여자 직원 한 명이 육두문자와 함께 출근한 것이다. 나는 순간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싶었으나,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 뭐야? 새로 오신 분? ㅎ 안녕하세요~ 윤미나예요."


잔뜩 쫄아 있는 내게 그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도 아, 안녕하세요, 이보나입니다. 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무엇보다 윤미나 씨는 어제 분명 없었는데 어떻게 야근을 했다는 것이며, 지금은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 왜 이제야 출근하는지가 궁금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윤미나의 정체를 궁금해하는데 윤미나의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는데, 윤미나가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은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의 모든 사람이 윤미나의 통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전화는 위층에서 걸려온 내선이었다.


-윤대리님. 어제 말씀하신 자료 좀 늦어질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그런데 윤미나는 스피커폰을 켜놓고 대답이 없었다.


-....저, 대리님?


상대방이 잔뜩 쫄아든 목소리로 되묻자 윤미나는 단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 3분. 3분 안에 처리해라."


순간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떴다. 저게 회사에서 쓸 말투이며, 동료에게 할 짓이란 말인가? 혹시 이 회사의 일진 언니인가? 나는 순간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들었던 '괴담'을 떠올렸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님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보나 씨, 입사 결정된 마당에 이런 말 하기 좀 그렇긴 한데... 그 회사에 미친X이 있대요."

"네? 어떤 미친X이요? 저는 못 본거 같은데."

"글쎄 그 사람이... 직원을 옥상에 끌고 가서 머리를 때렸대요. 싸대기 후려갈기듯이."


세상에 마상에. 나는 이것이 그냥 출판계에 떠도는 괴담 중 하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괴담의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괴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예전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나 대리님. 잘 지내죠? 이번에 모 출판사 가셨다고 해서... 제 친구가 예전에 거기 다녔는데, 어떤 미친 여자가 그 친구 머리를 펜으로 때렸대요. 조심하세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로써 모 출판사에서 머리를 가격하기로 유명한 미친 여자 설은 어느 정도 사실로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과연 이 사람을 견딜 수 있을까? 긴밀하게 협업을 할 수 있을까?


... 무엇보다, 이 사람에게 머리를 처맞지 않을 수 있을까?


윤미나의 기행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윤미나는 기본적으로 위아래가 없었다. 자기보다 상급자에게 소리 지르기, 반말은 애교였다.


"아, X발 X나 열 받네. 내가 이거 하기 싫다고 했죠? 내가 무슨 이 회사 시다바리야? 어? 이런 걸 왜 자꾸 시키냐고!"


상급자에게도 거침없이 쏟아지는 반말과 욕설은 옆에서 듣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자리에 앉아 윤미나의 고함을 듣고 있자니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창에서 내가 검색하지 않은 단어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검색창에는...

"$$출판사 이보나"라는 검색어가 있었다. 누가 내 컴퓨터를 몰래 켠 다음, 구글에 이름을 넣고 신상을 털려고 했던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이게 바로 오피스 공포영화인가? 일본 공포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윤미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었다. 다급히 이메일함과 파일의 마지막 기록, 인터넷 접속기록 등을 확인했다. 모두 어젯밤 10시가 넘은 시각.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누군가 밤에 몰래 내 컴퓨터를 켜서 파일과 이메일을 염탐했고 - 그 회사는 컴퓨터를 켜면 이메일에 자동 로그인되었다 - 그것도 모자라 구글 창에 날 검색해본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다급히 회사에 대한 리뷰를 제공하는 모 어플에 접속했다.


- 회사에 이상한 미친 여자 한 명 있음. 걸리면 신상 털리고 왕따 당하니 조심해야 함.


두둥. 이게 바로 내가 입사한 지 10일 만에 퇴사를 고민하게 된 이유다.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아래층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를 카페에서 마주한 팀장님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만두겠습니다."


팀장님은 윤미나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나를 말렸지만, 사실 나도 팀장님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아니'지 않다는 걸. 윤미나가 육두문자와 반말을 섞어가며 화를 냈던 상대가 바로 이 팀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분과 단 하루도 더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어요. 너무... 무서워요."


실제로 10일 만에 나는 우울증 증세가 매우 심해지고 있었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불안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팀장님은 한참 동안 한숨을 쉬며 말이 없더니 일단 알았다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온 팀장님과 나를 윤미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와서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보나 씨, 담배 한 대 피우죠?"


나는 친구에게 다급하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내가 전화를 갑자기 걸면.. 윤미나한테 처 맞고 있는 거니까 꼭 받아줘....


우리는 흡연 구역에서 각자 마주 보고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보나 씨 그만둔다면서? 나 때문에 그만둬요?"


헉. 눈치도 드럽게 빨랐다. 나는 다급하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그냥 회사 분위기가... 일하는 방식이 저랑 안 맞는 거 같아서요."

"뭐가 안 맞는데요?"

"아... 너무 바쁜 거 같아서."

"뭐가 바빠? 한 달에 책 두 권씩 내라 그래서 그래요? 그럼 그 정도는 일을 해야지 회사에서 돈을 주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윤미나는 회사에서 '직접적인' 실무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걸까? 한 달에 두 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는 걸. 다른 모든 직원들은 퀄리티를 떨어뜨리며 정말 죽을힘을 다해 일을 쳐내고 있다는 걸. 게다가 이건 윤미나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저랑은 좀 안 맞네요."

"나 때문에 그만두는 거 같은데?"

"에이 그럴 리가요."


우리는 한참 동안 입씨름을 계속했다. 담배를 두 대 태우고 나서야 나는 윤미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그다음 주부터 그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화를 말하니 모두들 경악하며 어떻게 회사에서 그럴 수 있는지, 사장의 딸이나 조카는 아닌지 물어보았다.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대체 윤미나의 정체는 뭐였을까?


아무튼 다시는 회사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시궁창컴퍼니 이후로... 이런 무서운 회사 사람은 처음이었다. 모쪼록 그 회사의 발전을 위해 윤미나에 대해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내가 퇴사 입장을 밝혔을 때의 미적지근한 태도로 보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발전하지 못하는 회사는 다 이유가 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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