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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부작용이랄까...  

낯선 나의 모습 바라보기 그리고 기다리기

지금, 여기 나 자신에게 집중

지금, 여기 눈앞에 닥친 고통을 초월하여, 세상과 우주의 원칙에 대한 통찰력과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기


명상을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입문자의 입장에서, 내가 이해한 명상의 정의와 목표는 두 가지로 정리. 불교에서 비롯한 명상수행법에서 말하는 삼매와 선정, 팔정도 같은 개념은 보다 심오하고 종교적이기도 해서, 완전히 체득한 건 아니지만.


속세와 완전히 단절된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지나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뒤 정신이 어리벙벙할 때가 있다. 다시 명상을 하려고 하면, 현실과 묘한 괴리감도 느껴진다.


분명, 긍정적인 면들도 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면, 순간 알아차리고 멈출 수 있다.

누군가 대화하다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인물이 연상되어 떠오를 때, 그 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깊은 좌절에 빠지거나, 후회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특히 작년 한 해, 공황장애와 불안증이 심해져서 심장이 마구 뛰고, 잠도 제대로 못 잘 때가 많았는데 그때 먹었던 약들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건강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발전이다.

잘 자고 편히 쉬어서 그런지, 마음이 한결 편해져서인지, 아픈 데들도 거의 사라졌다. 만성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인후통, 복통, 두통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이 있다.

부정적인 과거의 감정과 기억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회피성향'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부터인지 아무것도 되돌아보고 싶지 않고, 과거의 어느 것도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지나간 일은, 이미 나와 상관없는 일. 과거의 어떤 시점의 나는, 진짜 나 같지도 않게 느껴진다.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내가 애써 공들인 관계, 그런 노력들이 허망하기만 하다. 돌아보면, 다 휘뿌였게 아프고,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그런 노력 기울이고 싶지 않다, 그러지 않겠다.

사람들을 만나면 여전히 친절하게,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다. 굳이 가까운 관계를 만들고 싶지도 않다. 인간은 결국 혼자이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인연 맺기 마련이다. 이해관계가 맞으면 만나고, 그러다 운 좋게 더 마음 맞는 사람도 만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이해관계든, 욕망이든, 어떤 필요든, '인연'이라는 게 다해 멀어지면 그만이다.


지금 현재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짐들도 지고 싶지 않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구직활동도 더 열심히 알아보고, 혹은 이 기회에 칼럼이나 학술논문을 쓰던가, 책을 집필하던가. 내가 가진 지식, 경험 토대로 뭔가 더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

이제껏 그렇게 절박하게 노력했는 결과가 이런 허무한 결말이라면, 왜 그리 열심히 애썼을까. 과거의 내가 너무나 안쓰럽다. 다시는 그렇게 절박하게, 억척스럽게 애쓰며 살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의 내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어떤 인연이든, 일이든 직업이든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냥 쉬면서 기다리고 싶다.

이런 마음이니, 조금 힘들더라도 작금의 현실을 잘 인내하며 버틸 수는 있다. 하지만 어차피 또 이런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 마주칠 걸 생각하니 사실 별로 일하고 싶지도 않고, 서로 고통과 부담 주는 관계 새로 맺기도 싫다.

미래에 대한 별 기대도 옅어지고.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중장기 계획, 단기 계획 세우며 촘촘하게 살던 버릇도 이젠 피곤하기만 하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전인류가 보편적으로 겪어온 일들. 행복하고 불행한 모든 일들.

부유하게 살고 싶든, 명예나 권력을 쥐고 살고 싶든, 그것이 아니라 고매한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인간이 다 비슷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아등바등 살고, 결국 소멸한다.

내가 갖고 싶은 것, 추구하는 모든 것들도 다 고만고만한 것들이다.

그러니 더 이상 내게, 중요한 것들이 없어졌다.



이런 회피, 허무주의, 무기력이랄까. 그렇다고 정말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멀리 또 낯선 나라에 훌쩍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어디 두바이 모래사막같은 곳, 네팔 어디 트레킹 코스나 카자흐스탄 높은 설산, 태국의 명상센터같은 곳에 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회피나 허무나 무기력은 아니다. 그저 모든 것들로부터 초연히 멀어진 느낌이랄까.


명상 입문자,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명상을 시작한 입문자가 겪는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찾아보니, 명상의 부작용에 관한 논문도 있다. 보아하니, 이미 내가 겪는 이 정도의 부작용도 다 겪는 일이구나 싶다.

정희주, "명상의 부작용에 대한 개관"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0) p. 86


이미, 이런 부작용을 고려하여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명상법이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고, 이를테면 MBTI 16개 유형을 고려한 명상 프로그램 방법까지 제시되고 있다.

내 MBTI는 ESTJ, ENTJ 유형을 왔다 갔다 하는데, 명상연구소가 제시한 방법에 따르면!


ESTJ 경우,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구체적이면서 단순 명료한 명상개념 및 이론 강의, 시청각 자료 등을 활용한 명상의 실질적인 적용사례 소개하고,

1단계 (준비명상)에서는 절수행, 2단계 (본격명상)에서는 자애관 → 일출식념, 3단계 (열등기능 보완명상 단계)에서는 바라보기 명상을 추천한다.


ENTJ 경우,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체계적인 명상 개념 및 이론 강의, 명상의 유익성과 효과를 주제로 한 토론을 하고

1단계에서는 절수행, 2단계에서는 간화선, 3단계에서는 바라보기 → 자애관을 추천한다.


우선 108배 절수행부터 하고, 바라보기 명상과 자애관을 시도해보아야 하는 걸까.


이런 때 명상 스승이나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조차 찾아갈 마음이 절실히 들지는 않는다.

그러니 당분간은 내 마음의 힘이 생기길, 진정 건강한 힘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냥 매일매일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들, 내가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 머리도 마음도 무겁지 않은 것들을 그냥 해보려 한다.


내 평생 처음으로, 처음 아무 목표나 계획 없이 편안하게 마음을 놓고 있다. 어느 것에도 집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이 또한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면들 모두 있다.

언젠가 이 상태 또한 지나가겠지. 우선 지금은 내가 할 일들을 다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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