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카드 상품3팀 윤수진 (3)
1화: 간식 창고와 바퀴벌레
2화: 새벽의 일일실적 보고서
발령받은 부서는 상품 3팀이였다. 이름만 들어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회사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잘 팔리는 카드들은 옆 팀인 상품 1,2팀에서 맡고 있었다. 우리 3팀은 회사에서 잘 팔리지 않는,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만들어야만 했던 그런 소박하고 관심받지 못한 카드들을 다루는 곳이었다. 사용자들이 하나둘 떠나고 수명을 다해가는 카드들이 유효기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카드 세계의 요양원과 같은 곳으로도 볼 수 있었다. 신용카드 박물관이 있다면 전시되어야 할 것 같아 보이는 몇몇 카드들도 실제로는 세상의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해 상품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효율적이지만 로맨틱하기도 했다. 유효기간이 정해져있는 로맨스였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서였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팀이 싫지 않았다. 다들 받자마자 휴지통으로 던져버리는 일일 실적 보고때문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실이 짜증나는 것과는 별개였다. 우습게도 어느새 마음 속에 부서에 대한 애정이 자리 잡았다. 처음부터 상품3팀을 지망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카드회사에 왔으니 카드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입사 동기들은 회사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마케팅이나, 브랜딩 그도 아니면 파워가 센 전략부서를 지망했다. 하지만 나는 상품 부서를 선택했다. 어쨌든 카드 회사에 들어온 만큼 조금 더 핵심을 관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 번쯤은 내가 몸담은 곳의 핵심을 이해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경영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졸업한 것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1지망으로 상품 본부를 선택했다. 상품 본부 지원자는 나뿐이었다. 나가는 이만 있고 들어오는 이는 없어 만성 인력 부족 상태였던 상품 3팀은 옳다구나 하고 나를 받아주었다. 경쟁자 없는 싱거운 지원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1지망으로 지원한 곳에서 나를 흔쾌히 받아준 것은 처음 있는 일 같았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회사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극심한 급성 우울증에 빠진다는 친구들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하지 못한 채 적당히 맞장구를 치곤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우습지만 나는 회사원이라는 페르소나의 내가 마음에 들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과 비교해서 나는 회사생활을 꽤 성공적으로 운영해나갔다. 회사에서 대단한 성과를 낸 것도 엄청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 생활이 할만하다고 느껴졌다. 회사에서 하는 아니 회사가 시키는 일들이 그렇게까지 괴롭지 않았다. 배가 나오거나 어깨가 굽었거나 꼭 둘 중 하나에는 속하는 나이 지긋한 상사들과의 회식 자리도 견딜만했다. 잔이 비면 잔을 채우고 영혼은 없지만 거짓은 아닌 리액션을 남발하고 매번 비슷한 자식 자랑과 주식 이야기에 적당히 맞장구치는 일들을 그리 힘들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애초에 회사 생활에 대한 로망이 없어서인지, 좋은 회사니 감사하며 다니라는 부모님의 지속적인 세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정도면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팀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론 우리 팀이 너무나 마음에 들고 출근길이 행복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은 팀장 한 명에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차장 혹은 과장들이 각 파트를 맡아서 운영하는 구조였다. 우리 파트는 세 파트 중에서 주무 파트인 상품 기획파트였다. 사람 좋게 생긴 항상 니트 조끼를 입고 다니는 파트장 서 차장님, 그 밑에 묵묵하게 일하는 이 대리님, 그리고 후배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나보다 한 기수 빠른 선배 안 대리가 있었다. 다들 이 조그맣고 미래 없는 팀에 있기에는 과분한 이들이었다. 파트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다들 우리 팀이 얼마나 고생하는지에 대한 하소연으로 시작해 요즘 이직 시장은 어떤지로 넘어가 다들 힘내자 으쌰으쌰로 마무리 하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함께하는 고생은 견딜만 했고 때로는 직장인이라면 응당 겪어야 마땅한 로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회사에서 우리 팀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똑같은 시간 일하고 똑같은 월급을 받는데도 이상하게 명함에 적힌 상품 3팀이라는 글자는 우리 팀을 을로 만들었다.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은 1, 2팀이 만들어 내는 메이저 상품을 기준으로 진행되었다. 디자인팀이 1, 2팀의 상품에 잘 맞도록 카드 디자인 가이드를 정해주면 백여 개가 넘는 조악한 3팀의 상품들은 억지로 그 디자인에 몸을 맞춰 욱여넣어야만 했다. 마치 잘사는 친척의 맞지도 않은 옷을 물려받은 처지 같았다. 디자인팀은 가시적인 성과의 압박에 못 이겨서인지 자주 카드 공통 디자인을 바꾸곤 했다. 로고 위치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바꾸거나, 카드의 두께를 미묘하게 바꾸거나 하는 따위의 일들이었다. 그때마다 우리 팀의 수많은 카드에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하느라 새벽까지 회사에 붙들려있곤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밤이 되면 꺼져버리는 에어컨 때문에 차장님의 니트 조끼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나는 버려지는 카드들이 아까웠다. 0.03mm 두꺼워진 새로운 디자인에 밀려 잔뜩 만들어 놓은 카드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자니 어쩐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디자인팀 담당에게 두께만 바뀌는 것이라면 3팀 카드들은 기존 플레이트를 유지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카드의 그립감을 통일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카드의 그립감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땅한 반박을 하지 못한 채 야근에 동참할 뿐이었다.
어느 정도 업무가 손에 익자 본격적으로 카드를 만드는 일에 투입되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단체와 회사들이 자체 카드를 만들어 싶어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방 중소도시에 두 세개의 지점을 둔 중소형 마트라든지, 2군 야구단이라든지, 어느 지방의 향우회라든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본인들의 소속감 고취 혹은 마케팅 수단으로 본인들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카드를 출시하고 싶어 했다. 그 정도 규모의 마트라면 카드를 만드는 대신 전단 행사를 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들어오는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한 장의 카드라도 더 팔아야 하는 카드 팔이팀의 운명을 거스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옆 팀이 근사한 백화점 카드를 만들 때 안경점 체인 카드를 열심히 출시했다. 안경 10% 할인 서비스가 탑재된 카드를 묵묵히 만들고 안경점 로고도 예쁘게 카드 한쪽에 박아 넣었다. 상품 서비스 안내장을 만들어 그 안에 카드를 담아 신청한 고객에게 성실히 배송되도록 전달했다. 안경 10% 할인 금액의 한도가 2만 원이고 렌즈와 선글라스는 대상에서 제외, 그나마도 전월에 50만 원 이상 써야 할인이 적용된다는 중요한 사실도 안내장 구석에 잊지 않고 아주 작은 글씨로 적어 넣었다. 상품을 만든 뒤에 실적을 내는 것도 우리 팀의 담당이었다. 안경점 입구에 세워 놓을 엑스 배너라던지, 카드 홍보문구가 새겨진 안경 닦이와 안경집도 열심히 만들었다. 부지런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진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그런 카드들은 그대로 카드 요양원에 남겨진 채 유효기간까지 생명을 부지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