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배정받았던 팀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가까워진 선배가 있었다. 일 자체가 많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공격도 많이 받는 팀이었는데도 묵묵히 본인의 업무를 해나가던 선배였다. 우연찮은 기회에 그 선배와의 식사 자리가 생겨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하다 보니 회사의 고민거리들도 하나둘 털어놓게 되었다. 신입이었던 나에게 준비가 안 된 채 덩그러니 떨어진 일들, 일 자체가 나에게 잘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잘 맞는지도 모르는 일들을 잘해야 할 것 같은 걱정들로 매일매일 압박에 한창 시달리던 때였다. 선배에게 고민 꾸러미를 풀어놓는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생길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끙끙대고 있던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든 쏟아내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선배는 어떤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저.. 회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영혼 없는 공감 멘트 혹은 적당한 해결방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에게 선배의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그럼 결혼을 해, 결혼하면 다 괜찮아져’
내 고민에 대한 선배의 해결책은 바로 ‘결혼’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아직 이십 대 중반이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땐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도 조금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조언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결혼하면 회사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거든.’
예상치 못한 답에 이은 예상치 못한 이유였다. 사실 저 말을 들었던 그 당시에는 저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나는 당장 회사에 적응하고 성과를 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나 능력과 열정은 따라주지 않는 바람에 마음속엔 항상 조바심이 가득한데, 기껏 용기를 내어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결혼을 하면 된다니.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그때의 나에겐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라는 건 인생이 걸린 게임의 퀘스트와 같은 느낌이었다. 퀘스트를 깨지 못하면 나라는 존재는 다음 단계로 절대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던 나에게 결혼이라는 해결책은 너무나 뜬금없는 답으로 들릴 수밖에. 결혼과 일이 무슨 상관인지. 당장 난 상사가 시킨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깜깜한데, 결혼을 하면 갑자기 그 깜깜함이 해결되기나 한다는 건지... 특이한 선배네, 그냥 신혼이라 너무 좋은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마무리했었다.
그 뒤로 회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쌓여가고, 어떤 임계점을 지나고 나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선배의 그때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말을 이해했다고 해서 아직도 회사가 힘들면 결혼을 하라는 그 말 그 자체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때의 선배가 어떤 의미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였는지 그 의도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선배의 조언은 내 삶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즉, 내 모든 생각을 회사로 채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 선배의 경우는 결혼이 그 나머지 비중을 만족스럽게 채워주는 중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선배는 그때의 신혼 시절부터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아마 그 시절 그때에도 본인이 결혼한 뒤 느끼는 기쁨이 충만해 회사의 고단함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졌을 것이다. 선배 나름대로는 결혼이라는 그 해결책이 굉장히 실용적이고, 실행 가능한 조언이었을 것 같다. 조금 더 각색해서 전달했다면 혹은 내 이해력이 조금 더 좋았다면 그때 바로 그 속마음을 알아들었을 텐데 나도 선배도 조금씩 서투르던 시절이라 이제야 그 의도를 알아채게 되었다. 늦었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이 담긴 그 답변에 감사하고 싶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 모두의 인생 나머지 부분이 결혼으로 채워져야 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이 회사와 일로 가득 차 있지 않게 하자는 것이 조언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혹은 선배는 단순한 결혼 예찬론자일 수도 있겠지만…) 일 외의 나머지 부분을 결혼으로 채우든 취미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뭔가 다른 이벤트로 채우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무언가 일이 아닌 다른 활동으로 채워진 일상은 회사에서 쌓인 걱정들을 무뎌지게 만들 수 있다. 회사에서 10의 안 좋은 일이 생길 경우, 내 삶이 회사 하나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는 그 10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당연히 힘이 들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삶의 50%를 (여기서의 비중은 단순히 시간의 비중은 아니겠다.) 다른 일들로 채운다면 10의 스트레스는 5만큼 줄어들 수 있다.
경험상 이 비중을 단순히 의미 없는 휴식으로 채우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멍하게 유튜브를 보거나 인스타 피드를 뒤적이는 것은 나머지 비중을 진정으로 채우는 데에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내 20대는 오롯이 회사가 전부였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엔 에너지가 부족했다. 20대의 나는 열정 많았던 파트장을 따라 원치 않는 야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누워서 미드를 봤다. 미드를 보더라도 덕질을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하면서 영양가 있게 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냥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했다. 주말에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전 시즌을 몰아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누워서 남는 시간을 소진해갔지만, 딱히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냥 다음 출근까지의 시간을 때우는 수단 이상이 되지 못했다. 연속해서 다음 회차의 드라마를 보면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월요일을 맞이했다. 이러니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희석되거나 여과되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쏟아지게 되었다.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하면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일상에서의 회사 비중을 서서히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생존을 위해 수영이나 요가 같은 운동에 발을 담가 보았지만 크게 취미를 붙이지 못해 3개월 이상 지속하지 못했다. 역시 나는 운동이랑 맞지 않는구나. 학창 시절 늘 체육 시간이 곤욕스러웠던 나였기에 운동에는 소질이 없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맞는 운동을 찾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접한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되었고, 회사로 점철되었던 내 삶을 조금이나마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체력이 강해지니 더더욱 좋았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조금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일 외의 나머지 비중에 해당하는 것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퇴근 후에 빡세게 운동을 한다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두꺼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자기’를 ‘개발’하는 일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필수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 삶에서는 일 말고도 우리의 정신을 몰두할 수 있는 다른 능동적인 행위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배우나 감독의 덕질을 하거나, 눈에 들어오는 아이돌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소소한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도 너무나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나의 의식을 쏟을 수 있는 일련의 활동들을 찾아내어 나의 남는 일상을 그것들로 채우자는 것이다. 그것이 꼭 엄청나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나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일이면 족하다. 어떤 종류가 되었든 간에 내 머릿속에서 회사 생각의 비중을 줄여주는 것 만으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당연하게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당장 매일매일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거나, 일에 허덕여 취미 생활은커녕 여유롭게 머리 감을 시간도 없는 이들도 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루하루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는 이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나도 꽤 긴 기간 동안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회사 밖의 나 자신에게도 관심을 주어야 하며, 그것이 장기적으로 회사 안의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 회사에 있는 동안은 본인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좋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하는 태도다. 하지만 회사에 나의 모든 인생을 쏟지는 말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자칫 회사 밖의 세상을 놓친 채 세월을 보내게 되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영국 배스대의 한 교수는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내가 10살일 경우 1년이라는 기간은 내 삶의 10%를 차지한다. 내가 20살이라면 1년은 내 삶의 5%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느끼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나이가 들 수록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줄어들 텐데, 세월의 체감속도까지 짧아진다니. 자칫하다가는 입사를 하고 나서 정신 차려보니 중년이 훌쩍 넘어버리는 것이 과장이 아닐 것만 같다.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프다면, 그런데 당장 뚜렷한 해결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면, 우선 회사 일은 잠시 그대로 두고 나를 보다 더 즐겁게 해주는 일을 찾아보자. 회사라는 공간에서의 나는 나의 일부일 뿐이며, 온전한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 회사가 전부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