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이불 속에 파묻힌 채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고, 누가 뭐라 하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그런 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너무 쉽게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무기력한 내가 괜찮은 걸까.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남들은 다 바쁘게 뭔가 해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걸까.
그럴수록 나 자신이 점점 초라해진다. 괜히 SNS를 들여다보다가 또 자책하고, 누군가의 ‘오늘도 열심히!’ 같은 글귀에 찔린다. 나는 왜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는지, 왜 시작조차 두려웠는지 스스로 따지듯 묻는다. 무기력함은 실패의 전조처럼 느껴지고, 지금 이 감정에 빠져 있는 내가 결국엔 아무것도 못 해낼 것 같은 불안에 잠식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무기력함조차 삶의 일부일 수 있다. 계속 움직일 수만은 없는 게 사람이고, 고장 나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쉬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살아왔다. 열심히 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성과를 내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무기력은 나약함이 되었고, 멈춤은 낙오처럼 취급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멈춰본 적이 없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고, 잠깐의 휴식에도 스스로를 꾸짖는다. “이럴 시간이 어딨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같은 혼잣말은 결국 나를 나로부터 지치게 만든다. 그렇게 점점 나는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지만 무기력하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다. 무기력은 감정이지, 정체성이 아니다.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내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숨 쉬고 있다는 건 여전히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가끔은 멈춰 있어야 비로소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세상은 자꾸 더 빠르게 움직이길 강요하지만, 나는 내 속도로 살아가도 괜찮다. 오늘은 그냥 무기력하게 흘러가도 괜찮고, 아무 성과 없이 지나가도 괜찮다. 그런 날이 모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언젠가 다시 시작할 힘이 되기도 하니까. 무기력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회복을 준비하는 고요한 시간이다.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너는 왜 이것밖에 못 해”가 아니라 “지금까지 잘 버텼어”라고 말해보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그 말을 먼저 해줘야 한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멀리 갈 수 있다. 멈춤의 순간에도 나를 존중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삶이다.
무기력함 속에 빠진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자. 괜찮아, 이건 실패가 아니라 숨 고르기라고.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