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함에도 이유는 있어

by 괜찮지않은사람

사람들은 말한다. 게으르지 말라고, 움직이라고, 무엇이든 하라고. 마치 나태함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실패의 징표처럼 여긴다. 그러니까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날이면 죄책감이 먼저 몰려온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직 해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의욕은 커녕 기운조차 없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가장 먼저 비난한다. 나는 왜 이렇게 나태할까, 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나태함에도 분명 이유가 있다. 아무 이유 없이 하루 종일 무기력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미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살아왔고, 너무 많은 것들을 버티고 참아낸 채 살아왔다. 언제나 애쓰고, 이해하고, 견디는 쪽은 나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쉼을 주는 대신 “이러면 안 되지”라며 더 몰아세운다. 그 결과는 더 큰 무력감과 무기력뿐이다.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소진되었는데, 억지로 몸만 움직이려 하니 당연히 나아지지 않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꾸준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소모한다. 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쌓인다. 표정 뒤에 감춘 억울함, 말하지 못한 상처, 눈치 보느라 삼킨 감정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몸이 먼저 멈춰버린다. 의욕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다시 자책이 시작된다. ‘나는 왜 이렇게 나태할까.’

하지만 그건 나태한 게 아니라, 지쳐 있는 거다. 이미 많은 것을 감당해온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자꾸 다그치기만 하면, 회복의 기회는 더 멀어진다. 진짜로 나아가고 싶다면 먼저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나태함을 죄로 만들지 말자. 그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회복이 필요한 상태라는 증거니까.

세상은 늘 부지런함을 미덕이라 말하지만, 우리는 그 미덕에 너무 오래 짓눌려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면 게으른 사람이고, 쉴 땐 늘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쉴 자격’이 생긴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런 삶은 결국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기계처럼 버텨내기’ 위해 사는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은 하나도 나답지 않게 변해 있다.

나태함은 종종 내 안의 붕괴를 말해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나를 소홀히 대하고 있다는 메시지이고, 더 이상 이 방식으로는 못 견디겠다는 내면의 외침이다. 그러니 나태해졌을 때는 단순히 “내가 또 나태해졌구나”라고 단정짓기보다 “내 안에 어떤 무게가 쌓였을까”라고 묻는 것이 먼저다.

나는 지금 지쳐 있는 걸까? 혹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나를 너무 외면한 건 아닐까? 나 스스로를 방치하거나 혹사시키진 않았는지, 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이유 없는 무기력은 없고, 이유 없는 나태함도 없다. 그 안에는 분명 이해받지 못한 감정들과 풀리지 않은 사연들이 있다. 그걸 먼저 꺼내 들여다보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이다.

지금 나태한 나를 탓하지 말자. 오히려 “그럴 만했어”라고, “지금은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자. 그렇게 자신을 보듬고 쉬게 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다시 살아갈 힘을 찾게 된다.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건 죄책감이 아니라, 이해고 수용이다. 진짜 나를 사랑하는 길은 스스로를 계속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안아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기억하자. 나태함에도 이유는 있다는 것을. 그 이유를 미워하지 말고, 들여다보자.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사소한 인정에서부터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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