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떠나지 않았으면 어쩔뻔했어

퇴사 후 너덜한 나를 가득 채워준 15일의 발리

by NYNO


왜 하필 요가였을까? 왜 하필 우붓일까? 모르겠다.



나는 요가를 하다 말다 하는, 진지한 요기니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저 명상을 좋아하고, 요가가 주는 고요함을 좋아한다. 그래서였을까? 퇴사를 하고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열심히 계획을 짜고 아웃풋을 위해 애쓰다가 한 달도 되지 않아 지쳤을 무렵, 나는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


백수 주제에 무슨 여행인가 싶었지만, 지금 시간이 아니면 또 엄두내기 힘들 반달 살기라도 해보고 싶었다.

나무랑 자연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 언젠가부터 발리 '우붓'이라는 여행지가 귀에 들어왔을 때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기도.


사실 발리는 한 달 살기의 원조 도시 아닌가?
요즘 한 달 살기의 성지로 불리는 치앙마이 이전에 발리가 있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예전에 한번 가서 반하고 왔던 치앙마이도 고민했지만, 도시보다는 좀 더 자연에 머물고 싶었다.


마침 그 무렵 우연히 블로그에서 우붓에서 요가 여행한 사람의 글을 읽었고,
결혼식에서 만난 동기는 발리에서의 서핑 얘기를 했고,
직항 티켓 특가가 떴고.. 조그만 우연들이 모여 나를 발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매일같이 요가를 했다.

IMG_8809.JPEG
IMG_9059.JPEG
IMG_9337.JPEG
IMG_9339.JPEG


이곳에서의 요가 경험은 단순히 특별하다고 하기 부족할 만큼 특별했다. 마치 영적인 체험을 한 것 같았다.
새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1시간 동안 움직인 뒤의 마지막 명상에선 거의 매번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 어둡고 좁은 요가원에서 낑낑댈 때는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매일 같은 종류의 요가를 하지 않았고 엄청나게 힘들게 수련을 하지 않았는데도 6일째 매일 요가를 하다 보니 몸이 훨씬 더 열린 느낌을 받았다. 몸이 점점 부드러워졌고 다운독이 처음보단 훨씬 편안했다. 하루 전에 불편했던 하이런지도 2일 뒤에는 편안해졌다. 매일매일 요가를 하는 경험은 정말 달랐다.




우붓에서 자연이 가득 들어찬 스튜디오에서 변화를 느끼며 요가를 하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그 외에도 발리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사람들은 미소가 가득하고 친절했고,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 소리가 뒤섞인 자연의 소리는 황홀했고,
음식도 꽤나 자극적인 편이라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았고,
온갖 액티비티를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아도 좋은 곳이었다.

IMG_8663.JPEG
IMG_8867.JPEG
IMG_8955.JPEG


무엇보다 발리는 엄청나게 오래되고 번화한 관광지이지만 너무 상업화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순박하고, 엄청나게 많은 리조트와 호텔들 사이에서도 숲은 울창했고, 사람들은 하루 3번 신들에게 의식을 올렸다.

길거리에서 코끝에 닿는 진한 향내를 맡고 돌아보면 어김없이 갓 향을 피운 치낭사리가 있었다. 나는 이 섬의 매력에 순식간에 빠졌다.


내가 망설임을 딛고 떠나온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IMG_9730.JPEG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빨리 잊는다.

여행을 수도 없이 해봤지만, 여행지의 설렘을 일상에서도 간직하자는 다짐은 지켜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의 마음가짐만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닳아서 희미해질 때,

내 팔에 남은 가느다란 발리니즈 실팔찌가 너덜너덜해졌을 때,

나를 다시 채우기 위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남긴다.




IMG_9520.JPE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