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파 Sep 11. 2021

엔더의 게임

탁월한 교육이 아이의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이 책은 원하지 않았지만 전쟁영웅이 된 어린 아이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흔히들,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여러 비판의 지점이 있지만 대개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셀프리더쉽 부족: 학교와 부모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아이들은 자기주도성을 잃었다.

2. 창의성 부족: 주어진 문제를 빨리 푸는 훈련만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문제틀을 제시할 줄 모른다.

3. 인성 부족: 경쟁을 통해 등수를 올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감성이 부족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셀프리더쉽, 창의성, 인성(감성 및 문화지능)을 길러주면 그것은 좋은 교육이라는 게다. 과연 그런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우선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야 한다. 좋은 교육이란 게 아이의 잠재적 재능을 끌어내 그를 훌륭한 인재로 키우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그 인적 자원이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상론한 교육은 좋은 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엔더의 게임에서도 드러나듯, 과연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가 행복할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좋은 교육이라는 것이 정신/영혼에 대한 가능한 최소한의 침습만을 허용하며  아이를 행복하게 생존할  있게 만드는 것이라면, 셀프리더쉽/창의성/인성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교육은 좋은 교육이 아니다.


미래 인재의 역량? 스스로 문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할 뿐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이 미래인재고 이런 자들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를 그러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상처를 입혀야만 한다. 니체의 말을 조금 변용하자면, "아이를 파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그 아이를 성장시킬 것이니까" 셀프 리더쉽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를 위기상황에 내팽겨쳐야 한다. 진정한 창의성은 고통 속에서만 끌어낼 수 있다. 또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는 어떤 근원적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아이는 스스로도 끊임없이 타자에게 상처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엔더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나오는 아이와 본질적으로 같다. 그렇다. "그 아이" 말이다. 그리고 자녀를 인재로 키우려 노력하는 수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위해 아이의 인생을 강탈하고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엔더에게 어른들이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물론 우리 모두는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아이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하나의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들과 그에 따른 의미들을 강제로 포기당해야 했다는 사실을 곱씹는 날이 왔을 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이 된 아이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인생은 원래 그런 거라고,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이기적이며 오직 힘만이 진리라고 배워온 아이들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과연 그들은 어떤 느낌과 생각 속에서 죽어가게 될까?

이전 07화 86 -에이티식스- (애니 파트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