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 함안은 자두, 복숭아, 포도 농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 7시에 아이들과 생명의 에너지를 북돋우는 몸 깨우기를 하기 위해 오며 가며 만나는 과실수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지렁이를 비롯하여 엄지손톱 크기의 청개구리, 주먹만 한 두꺼비도 만날 수 있고 흰나비, 호랑나비와 도시에서 잘 볼 수 없는 제비도 눈에 띄곤 합니다. 교육원 배수구 기둥이나 관사 환기구는 어미 새가 알을 낳아 새끼를 낳아 기르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소하천을 따라 걸으며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와 전원의 풍경에 취해 더없이 그윽한 재미를 누리고 있기도 합니다.
농암 김창협은 1682년(숙종 8) 32세의 나이에 장원 급제하여 병조참지,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1689년(숙종 15)에 기사환국(己巳換局: 남인(南人)이 희비 장씨의 소생인 원자(元子) 정호(定號) 세자 책봉 문제로 서인을 몰아내고 재집권한 일) 때 아버지인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진도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유지(遺旨:죽은 사람의 살아계셨을 때의 뜻)에 따라 그는 39세의 나이에 벼슬을 내려놓고 지금의 경기도 포천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몸 깨우기를 하러 가며 짓궂은 아이들은 떨어진 복숭아나 가지에 매달려 있는 그것을 재미로 혹은 혹하는 마음에 따기도 하고 줍기도 하다가 과실수 주인분에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가지 위에 남겨둔 복숭아를 보여 주며 왜 남겼을까 묻고 답하며 선현들의 생명에 대한 사랑,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배려를 체득하게 되기도 합니다.
일찍이 무위자연을 노래한 노자는 “욕심을 그칠 줄 알면 생명이 위태롭지 않으며 만물이 제 천성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다.[지지이불태 가이장구(知止而不殆, 可以長久)]”고 노래하였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대하거나 해치지 않고 지구공동체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이자 벗으로써 이들과 함께 나누고 공경할 줄 안다면 선현들이 남긴 생명 사랑의 의미가 오늘날의 세상은 장작불, 촛불, 손난로처럼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