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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수 Jan 15. 2024

예민한 사람이 음악을 듣는 방법.

이미 자리를 잡은 그이에게 살면서 한 끗의 책망도 주고 싶지 않다.


보통은 익숙한 이들의 곡을 듣는다.
내내 그것만 듣는다.

집착증처럼 줄곧 고집한다.

그러다 알고리즘이든 방송이든 무언가 나를 사로잡는 멜로디가 있으면(잘 없다.) 찾아본다.
그게 대개는 아이돌의 노래들은 아니렷다.


그렇게 찾은 곡, 그리고 곡자.


아직 듣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이 곡이 싱글인지 앨범의 수록곡인지부터 확인 후 앨범이라면, 앨범의 구성을 본다.

몇 번 트랙에 위치해 있는지.

전곡과 다음곡의 제목무엇인지.

앨범의 제목은 무엇인지. 

그렇게 짠 이유는 무엇인지.


곡자의 이력도 본다.

곡자의 음악 중 혹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있으려나?

있다면 반갑고, 없다면 설렌다.


그리고 곡자의 인터뷰 같은 것들도 찾아본다.

(이때 싱어송라이터라면 나의 사랑을 갖게 될 확률이 꽤 높아진다.)

왜 음악인이 되었는지.

무엇을 노래하고픈지.

어려서 꿈은 무엇이었는지와 같은 곡자 내면을 깊숙이 알 수 있는 인터뷰 같은 걸 꼼꼼히 본다.



그리고 나는 이쯤에서 대부분 입덕을 포기한다.

곡자의 말 마디마디를 예민하는  마음에 꼭 맞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도 마음에 들면 곡자의 나이, 고향, 외관 등도 찾아본다.

SNS에도 들어가 어떤 게시글을 주로 업로드하는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한 개인으로서의 그를 훑은 후 그에 대한 평가도 찾아본다.


사실 그 평가가 좋든 좋지 않든 크게 상관은 없다. 그렇지만 너무 악평이 가득하다거나, 논란과 사고가 많다면 여기서 하차하기도 한다. 좋은 인간이 만든 곡만 듣고 싶기 때문이다.



이 정도쯤 하면 그 곡이 어떠한 사람에게서 어떠한 맥락에 의해 나오게 되었는지 65%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제 이어폰을 준비할 차례다.


하지만 재생 버튼은 아직이다.

누르기 전, 곡자가 써놓은 앨범 소개글을 다시 찬찬히 정독한다.

곡마다의 소개글이 있다면 그것도 꼼꼼히 본다.

(아이유의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곡 소개글이 아주 수려한 편.)



다 읽었다면 드디어 재생을 한다.

이때, 플레이리스트는 곡자의 전곡이며, 첫 앨범 첫 트랙부터 차례로 듣는다.


거의 가사를 보며 듣지만 할 일이 있으면 그냥 BGM처럼 틀어 놓기도 한다. 처음 내 귀를 사로잡은 그 곡이 다섯 번째 앨범의 마지막 곡이래도 꼭 그렇게 한다. 하루 꼬박 들어내면 저녁쯤엔 들을 수 있다.



이 단계까지 왔던 가수도 별로 없지만, 여기서 99%는 탈락이다.

당연하게도 전곡이 다 좋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가복제스러운 음악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된다.


혹여나 단계에서 마저도 나를 감동시킨다면 이제 정말 거의 다 왔다.




천천히 곡자의 음악 인생을 따라서
내 인생을 거기에 반추해 보기도,
다음 곡은 무엇이려나 추측하기도,
맛있는 음식과 페어링도 한다.



 과정에서 곡자를 완벽히 사랑하게 되면,
가사를 왼다.
매번 가사를 읽으며 듣는 건 무리가 있으니 되도록 외워서 듣도록 한다.



외는 과정마저 즐겁게 느껴진다면 이제 나는 무장해제다. 

앞으로 내 귀는 당신만 허락한다.


극성스럽게 따져 물은 결과로 새 앨범이 어떻든 그런 건 상관이 없어진다.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듣고, 왼다.

어차피 곡자 자체가 내 취향이라 낯선 음악들도 결국은 귀에 익게 된다.


이미 자리를 잡은 그이에게 살면서 한 끗의 책망도 주고 싶지 않은 나의 충성스런 팬심이렷다.

나의 사랑을 얻은 그 곡자는 나 눈감는 날까지 마음 한켠 똬리를 튼다.

나는 아주 기쁘게 커다란 한 켠을 내어준다.


 


그렇게 까다로이 따지는 내가 사랑하게 된 곡자는

 백예린

 The volunteers
 김광석
 히미츠

 the 림

 f(x)


총 여섯이다.





나같이 예민하고 주제넘게 까다로운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감히 누굴 평가하고 재단하는 꼴이 아주 우습다. 그렇지만 쉽게 고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극도로 예민한 나의 어쩔 수 없는 사랑 방식이니까.


사람도 이렇게 꼼꼼히 따져야 하는데 그건 못하면서 애꿎은 음악만 쥐 잡듯 잡는 것 같다.


좋다, 새해에는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듣도록 해보겠다.

덜 예민하고 덜 꼼꼼해 보겠다. 실은 나도 이런 내가 조금은 질리던 참이다.





혹시나 여기까지 읽어주셨으면 노래를 한곡씩 추천해 보고 싶어요.


 백예린 - November somg

 The volunteers - nicer

 김광석 - 그날들

 히미츠 - 곡부득이소정가

  the 림 - 비 묻은 바람

  f(x) - 드라큘라


정도 될 거 같아요. 물론 전곡이 다 좋지만, 그중 특히 애정하는 곡입니다.


특히 애정하는 곡은 매번 바뀌는데 지금 이 글을 적는 순간엔 저 곡들이 그렇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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