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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2. 2022

아버지와 모래

지하철 의자 무늬는 왜 어둡고 복잡할까?


대중교통의 의자가 복잡한 무늬인 이유는 매일 수많은 승객이 이용하면서 생기는 얼룩을 숨기기 위함이라고 한다.

얼룩과 흙먼지를 숨기기 위해 대중교통 의자만큼이나 복잡한 우리 아버지의 작업복. 아버지의 작업복을 닮은 지하철 의자에 앉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노동으로 얼룩진 사람이었다. 안전모로 눌렸던 머리를 숨기기 위해 언제나 모자를 썼고, 연장이 잔뜩 담긴 검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다니셨다.

퇴근길 저 멀리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온다.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 제법 가까이서 봐도 우리 아버지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다만, 축 처진 어깨로 내게 손 흔드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일 것이다.


저녁 시간이 돼서 아버지가 돌아오면 밖에서  털지 않고, 같이 들어온 모래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모래는 밖에서 털고 오라고 언성을 높였고, 아버지는 현장에서 일하는데 어떻게 모래가  떨어지냐고, 그건  돈이 떨어지는 거라고 했다. 익숙한  소리에  이상의 싸움이 커지지 않도록 나는 떨어진 모래를 청소하면서 생각했다.


‘아버지, 돈은 꼭 모래가 떨어져야 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건 아버지가 다른 방법을 몰라서예요.’


공사 현장이 매번 바뀌어도 종일 달라붙은 모래 먼지는 우리 집까지 아버지를 따라왔고, 그 일로 어머니와 하루가 멀다고 다퉜다. 벗어내는 모자에서 작업복에서 양말에서 작은 돌멩이와 모래가 끝도 없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모래를 마시고 만졌으면 털어도 털어도 털리지 않은 저 많은 모래와 같이 퇴근했을까?

언제부턴가 아버지에게 모래는 하루 노동에 대한 훈장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런 훈장을 밖에서 털어내는 법 없이 자랑스럽게 집으로 가져오셨다. 기어이 집에서 털어내는 모래를 보면서 아버지는 하루의 고단함도 털어냈을까?


아들딸이 대학을 나와 흙먼지를 일으키지 않고 밥벌이를 하는 것이 세상 자랑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는 모르게, 나도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내내 모래를 흘린다. 집안 더럽히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어머니도 모르게, 내 눈에만 보이는 이 모래는 나의 우울함과 함께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다 끝내지 못한 업무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감당해야 하는 내일의 걱정이 보이지 않는 모래가 돼서 나를 따라왔다. 내 머릿속에서 사포가 돼서 여기저기 상처를 내며 긁어대다가 잠이 든 나와 함께 가라앉는다. 모래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아니었다.


‘아버지, 아버지 말이 맞아요. 사람은 모래를 흘리지 않고서는 돈을 벌 수 없는 거 같아요. 돈을 버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흙먼지를 일으키는 거 같아요.’


운이 좋은 날은 만원 지하철에 지친 몸을 기대앉는다. 무슨 모양인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은 이 복잡한 지하철 의자에 앉아 생각한다.

내 모래인지, 우리 아버지 모래인지 또 다른 누군가의 모래인지 모를 이 고단함이 그 목적대로 복잡한 무늬 위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우리의 고단함이 누군가를 걱정시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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