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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22. 2022

유자나무에게 보내는 기별

유자 꽃말 : 기쁜 소식


바람도 꽤 찬 것이 이제 곧 수능인가 보다. 수능을 본지 벌써 17년이나 지났지만 이렇게 편히 맞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매년 수능이 가까워지면, 예선전에선 떨어졌지만 차마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는 선수 심정이었다. 내 경기는 이미 끝났지만, 다음 경기 중인 선수들을 응원할 수 없었다. 다들 나처럼 망쳐 버렸으면 하는 놀부 심보에서 꽤 오래 헤어나질 못했다.


내가 고3 때는 고흥에서 상경한 우리 집 유자나무가 10년 만에 처음 꽃을 피웠다. 엄마는 내가 명문대학에 입학할 길조라고 좋아하시며 이리 와 꽃을 보라고 했다. 정말인가 싶어 봤던 베란다의 하얀 유자꽃. 엄마 말처럼 꼭 수능을 잘 볼 것만 같아 기뻤다. 그 하얀 꽃이 마치 오랜 친구가 보내준 응원 같아 뭉클했다. 그러나 나는 그해 수능을 망쳤고, 길조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유자나무는 내 눈치를 보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2005년 11월. 일 년 내내 ‘할 수 있다’고 걸었던 자기 암시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사람이 염원이 강하고, 자기 최면이 지나치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판단력도 흐려지는 법이었다.

수능을 망친 줄도 모르고 자기 최면에 걸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수능시험이 어땠나 궁금해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괜찮았다고 말하고 내 방에서 가채점했다.

언어 95점, (나중에 알고 보니 물수능이라 내 언어 점수는 3등급이었다) 이때만 해도 드디어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구나, 유자나무 꽃이 길조가 맞구나 생각했다. 곧바로 수리를 채점하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몽롱해졌다.


외국어에 이어 사탐까지 채점하고 나서야 1년간의 자기 최면이 풀렸다. ‘아! 망했구나. 잠깐만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이거 현실인가?’ 내 점수를 보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는 방에서 나가셨다.

그날도 역시나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는 “다 됐고, 고생했으니 짜장면이라도 시켜 먹어야지” 하셨다. 엄마는 지금 짜장면이 중요하냐고 그런 아빠를 나무랐다.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니 그날 내 저녁은 짜장면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졸지에 대역 죄인이 되어 저녁도 안 먹고 내 방에서 종일 울고만 있었다. 그날은 왠지 그래야만 할 거 같았다.


그때 내 방문은 부엌과 맞붙어있는 미닫이식 유리문이었는데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바깥소리가 잘 들렸다. 나는 울고 있으면서도 별나게도 바깥소리가 더 신경 쓰였다.


당시 대학생이던 오빠가 집에 와 저녁을 먹으며 식탁 맞은편에 앉은 엄마에게 내 수능에 관해 물었다. 엄마가 “몰라 시험 망쳤나 봐. 방에서 저러고 있어” 하는 데 내 이야길 듣고도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해 분했다.

눈물은 떨어져도 밥숟갈은 올라간다고 종일 진을 빼고 와서 그날 저녁은 배가 너무 고팠다. 밖에서 저녁 먹는 소리를 들으니 더 허기졌다. 방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기는 왠지 죄스럽고 창피해 수능 선물로 받은 초콜릿을 먹기로 했다. 소리가 날 게 뻔하지만, 방 안에 먹을 게 페레로 로쉐밖에 없었다. 부엌에 있는 엄마, 오빠가 듣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껍질을 깠다.

금박지로 쌓여있는 초콜릿은 시험을 망치고도 배고픈 나처럼 눈치도 없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걸 들은 엄마가 “으~이구 밥 먹으라니까 밥은 안 먹으면서 다른 건 먹는 거 봐” 하면서 헐은 마음에 소금을 뿌렸다. 눈물 젖은 빵은 없어서 못 먹었지만 대신 눈물 젖은 초콜릿은 먹을 수 있었다.


거실에서는 벌써 심란한 마음을 떨쳐내고 일일연속극을 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드라마에는 고3 학생 배역이 있었는데 마침 수능 날 방송분이 그 고3 학생이 수능을 망쳐서 우는 장면이었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지 TV 속 가짜 고3도 울고, 우리 집 진짜 고3도 우는 소리가 겹쳤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그날은 밤 10시 전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고3 때는 공부하느라 일찍 자본 날이 없었는데 막상 망친 수능 날이 되니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잠이 든 내내 수능 보는 꿈을 꿨고 일어나 보면 아직도 밤이라 현실 감각을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오늘 수능시험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분간이 안 됐다. 마음은 밤새 뭉개졌고, 아무리 자도 해가 뜨지 않는 극야 같은 밤이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7살에 다시 대학에 합격하니 그제야 매년 돌아오는 수능 날이 더는 아프지 않았다. 대학에 다시 가서 얻은 것 중에는 지독히 울어댔던 그날을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도 포함됐다.


따뜻한 남쪽 나라가 고향인 우리 집 유자나무는 어쩜 내가 고3일 때, 딱 한 번 꽃을 피워냈을까? 여전히 고향에 사는 유자나무 친구들은 매년 꽃을 피우고, 이맘때쯤 열매를 맺겠지.

이제 더는 없는 유자나무에게 오랜만에 기별해야겠다. 유자 꽃말처럼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


‘이제 나는 괜찮다.
늦가을 날에는 관중석에서 앉아 경기장에 선수들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
씁쓸하고 눈치 없이 바스락거렸던 그날의 기억도 이제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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