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전쟁이 끝났다. 기억 속에 아빠의 삐삐를 만져서 처음 혼났던 그 순간부터, 죽기 며칠 전에도 운전 중에는 전화하지 말라는 아빠의 마지막 화까지 우리의 모든 전쟁이 이렇게 끝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빠와의 싸움을 ‘싸움’으로 표현하지 ‘혼났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바득바득 눈을 부라리며 대들기 시작한 시점부터일 것이다. 나는 있는 힘껏 아빠에게 맞섰다. 그러므로 아빠만 가해자였던 것은 아니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었다'는 말로, 분노에 찬 표정으로, 불손한 태도로 불효녀 가해자가 되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아빠에게 상냥하게 대할 수 있을까, 더 수용적인 자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것에 후회가 남아있을까. 후회되지 않을까. 아빠가 죽기도 전에 이런 것들이 걱정됐다. 그러지 말자고 미리 다짐해 뒀다. 미움은 미움이고, 맞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이 달라지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빠는 끝까지 아빠였고, 죽음으로 인해 아빠에게 더 미안해하거나, 더 사랑하게 될 일은 없다. 다만 지난했던 우리의 모든 전쟁이 이렇게 끝났고, 전쟁뒤에 남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폐허다. 떠난 아빠에 대해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으나, 나쁜 것은 이제 아빠의 육신과 같이 묻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좋았던 점들은 남긴다. 고마웠던 점들은 되돌아본다. 심지어 우리의 전쟁은 조금 미화된다.
이제 이 세상에 나를 위해, 혹은 나 때문에
그렇게 핏대 세우며 화낼 사람은 없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