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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Jan 21. 2016

58. 서양의 대안적 정치 사상들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칼 폴라니, 제3의 길을 너머서

페이비언 사회주의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청빈한 삶, 자발적 가난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보자는 사상에서 출발하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과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회 운동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1884년 페이비언 협회가 조직되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당시 유명했던 지성인들이 대거 회원으로 참여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들은 과격한 혁명적 변화가 사회의 불안정을 야기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가피한 피해를 준다는 관점에서, 점진적 개혁을 통한 사회변혁을 시도하였습니다. 이 협회를 전면에 나서 이끈 영국의 소설가 버나드 쇼는 "영웅적 실패보다는 지루한 성공"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고대 로마 시절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을 맞아 지구전 전술로 로마를 지켜내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 장군의 이름에서 착안하여 "페이비언"이라는 이름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내세운 주요 정책은, 개인 및 계급이 소유했던 토지와 산업 자본을 공동체(정확하게는 국가)가 소유하여, 지대와 이윤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노동 생산을 초과함으로써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각 개인이 청빈한 삶을 실천함으로써 물욕을 제어하자는 것까지, 왠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에서 이야기한 맥락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껴지시지 않으신지요? (참고자료1 : "자본의 순환 1, 빈부격차와 저질의 일자리"(바로가기 링크), 참고자료2 : "보다 영속적인 가치 1~4"(바로가기 링크))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사회 문제가 부의 독점과 자본 순환의 정체로 인한 복합적 현상이라는 점, 그리고 근본적으로 각 개인의 무의식에 각인된 개인소유 사상의 가치관과 통제되지 않은 욕망이 그 원인이라는 점에서, 본 글에서 주장하고 있는 방향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페이비언 사회주의 운동은 영국 노동당 창립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국가의 사회 복지 발전과 국민들의 복지 의식을 향상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버나드 쇼가 기대했던 바와 같이 느리지만 점진적 성공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다만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몇 가지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페이비언 주의자가 주장한 토지와 산업 자본의 소유의 국유화는 또 다른 중앙집중의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국가 차원의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사회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가 투명하게 운영되어 합의된 정의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무한한 부와 권력을 추종하는 인간의 본성을 국가 단위의 그룹에까지 제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요. 상호 호혜의 공동체가 국가적 수준에 이르는 것은 매우 더딘 일이 될 것이며, 오히려 작은 형태에서부터 뜻을 함께하는 공동체가 토지와 산업 자본을 공유화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사상운동을 실시했던 방법에서 시대적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페이비언 주의자들은 노동자를 위한 운동을 실시하였지만, 그들이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지식인과 기득권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대다수의 노동자가 낮은 학력의 소유자였고, 어떤 사상을 전파하기에도 그 수단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지금 시대는 어떠한가요? 다수의 국민이 최소한의 교육을 이수받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에 있으며, 대중 매체 및 인터넷과 같은 채널을 통해 순식간에 생각과 사상을 전파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영국 사회 발전에 큰 도움을 주긴 하였지만, 해당 단체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절에도 회원 수가 5천여 명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변화를 꾀할 수는 있었지만, 더 큰 힘을 가진 대중들을 효과적으로 포용할 수 있었다면 현대 정치 제도를 이용하여 더 빠른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각 국민들이 변화에 동참하고 주역이 된다는 것으로도 어마어마한 사회적 동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각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본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내려놓기와 관심, 배려, 인정, 보다 영속적인 가치로의 전환하자는 주장과 이를 글로 통해 여러분께 전달하려는 것은 페이비언 사회주의가 놓친 퍼즐의 한 조각인 것입니다. 이 길은 분명 맞는 방향이며, 우리는 남은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추어 이상적인 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칼 폴라니와 제3의 길


서양의 대안적 정치제도를 논하는데 있어 칼 폴라니와 제3의 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칼 폴라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철학자로, 경제와 사회의 관계를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해석하여 『거대한 전환』이라는 저서를 통해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폴라니는 자본주의의 핵심 메커니즘인 "시장교환"은 여러 가지 경제 제도의 하나일 뿐, 원시적 형태에는 비시장적 경제 - 상호 호혜의 원리와 이타적 행동 - 에 따라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비시장적 경제를 상품화시키는 것은 사회적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전체주의나 파시즘, 경제 대공황은 토지와 노동 같은 상품화할 수 없는 존재를 상품화시킴으로 나타난 반작용적 현상이며, 만약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면 인간 사회는 붕괴되었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본래 인간은 이윤추구보다 공동체를 더 생각하는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공동체 사회의 제도와 문화, 교육 및 정치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비시장적 경제가 잘 구현되고 작동되어 공생과 공영의 가치(지속가능한 삶)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것을 "민주적으로 통제된 경제"라고 표현하였는데, 자본과 상품을 중심으로 한 시장 경제 논리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 논리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생계수단을 공장에 의지하는 삶을 지양하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그 방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한편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이 위기에 빠지고 사회 민주주의의 복지 포퓰리즘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자, 전면적 복지를 철폐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으로 신자유주의(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가 득세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친 시장 참여자의 과욕으로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피폐해지고 사회 노동력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자, 선택적 복지의 틀은 신자유주의와 동일하지만, 복지의 목적을 "생산적 복지"로 명명한 중도 좌파적 실용노선인 『제3의 길』이 등장합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에 의해 제창된 개념으로, 국가가 사회적 투자를 담당하여 무조건적 복지가 아닌 고용과 생산 향상을 위한 복지를 통해, 좌와 우를 포괄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입니다. 근로자들이 사회적 위협에 의해 노동력을 상실하는 것을 방지하고 스스로 자립하여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형태의 개념인 것이지요. 1997년 영국 총선에서는 토니 블레어 당수가 당시 『제3의 길』을 내세워 영국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총리로 임명되었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정치 경제 실험에 대한 관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3의 길은 사회주의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였고,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잠깐 유사한 정치적 흐름이 나타났으나 복지 축소 등의 정책이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제3의 길이 칼 폴라니의 비시장적 경제를 추구하는 인간 본성을 착안했다고 하지만, 실제 정책의 운영에 있어서는 보편적 복지가 축소되고, 노동자가 더 일을 잘 해서 기업가가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두 가지 사상의 등장과 쇠퇴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칼 폴라니에 의해 비시장적 경제가 통찰되고 그것이 인류의 인간 본성에 맞는 경제 체제라는 것이 논의된 뒤 제3의 길에 의해 실천되었다는 점, 두 번째로 제3의 길이 국가 주도 정책으로 진행되면서 정작 가장 근본적 주제였던 상호 호혜의 공동체 배양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앞서 페이비언 사회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가 그리는 세계 중 비극적 결말의 단편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이들 또한 상호 호혜의 공동체가 만들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고, 그에 대한 방향으로 비시장적 경제와 생산적 복지 같은 개념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본 연재 글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호 호혜의 공동체로의 진화를 이야기한 부분이라던지(참고자료 : "공동체 의식의 확장 2, 개인에서 새로운 질서의 공동체로"(바로가기 링크)), 한 사람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이야기한 부분이(참고자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바로가기 링크))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이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서양 특유의 개인주의적 관습과 문화, 그로 인해 나타나는 공동체 정신의 낮은 이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수의 인물이 사상을 창안하고 국가 제도화하였지만, 대중적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저는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방향과 방법은 이미 수없이 많이 제시되었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이 바로 우리 사회에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미래가 어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 두루 넓은 영역의 시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살피고픈 분들,

통합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 원칙과 상식이 있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하시는 분들,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지금 바로 『이기심의 종말』을 만나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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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 https://goo.gl/FMY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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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 - https://goo.gl/gPqNDA

교보 - https://goo.gl/3hhkU7



<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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