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 피는 꽃, 앙스트 블뤼테

과잉 배려 - 선행의 역설 - 사회 그런 것 없습니다

by 포레스트 하이

코로나 블루, 재택근무의 시대! 식물의 힘은 강합니다. 홈 가드닝, 홈 파밍과 함께, 플랜테리어란 이름으로 빠른 속도로 식물들이 집안을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반려식물, 식물집사, 식물병원, 식물호텔과 같은 신조어도 생겨 났지요. 우리나라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식물 키우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쓰레기장에서 버려져 신음하는 유기 식물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식물이 죽는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안 줘서라는 답이 많지만, 첫 번째 이유는 의외로 과습(過濕)입니다.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물을 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도 있습니다. 영양제 과잉 투여도 한몫합니다. 제가 키우던 스파티필럼 – 영화 <레옹>에서 마틸다가 안고 다니던 - 이 시름시름 앓기에 분갈이 겸 화분을 해체해 봤습니다. 아래쪽은 물이 흥건했고, 뿌리는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과잉 사랑이 초래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타살입니다.


선물로 주고받는 난(欄)은 온실에서 대량 재배됩니다. 화훼업자들은 출하시기가 다가오면 온실 문을 활짝 열어 온도를 낮춰 버립니다. 난초는 갑자기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추위를 느낀 난초는 죽을 때가 다가왔다고 인지하고 죽기 전에 재빨리 꽃을 피워 자손을 번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식물 칼럼니스트 박중환은 『식물의 인문학』에서 이를 ‘스트레스 개화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앙스트 블뤼테(Angstblüte)’라는 생물학 용어가 있습니다. 독일어로 ‘불안’을 뜻하는 ‘앙스트(Angst)’와 ‘개화(開花)’를 뜻하는 ‘블뤼테(Blüte)’의 합성어입니다. ‘불안 속에 피는 꽃’으로 번역하지요. 식물의 모든 전략은 생존과 번식에 맞춰져 있습니다. 생존이 위태로워지면 최후의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종족을 번식하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대나무가 죽기 전에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고, 공해가 심한 지역의 소나무가 유난히 솔방울을 많이 맺는 현상 또한 ‘앙스트 블뤼테’라고 합니다.

영화 <레옹>에서 스파티필럼 화분은 들고 걷는 마틸다


과잉 배려가 의외로 생장을 가로막고, 스트레스가 오히려 개화를 부추기는 역설적인 현상! 회사나 사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전통적으로 일본과 한국 기업들은 종신고용, 가족주의와 같은 감성 경영이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라 여겼습니다. 한때 미국 기업들도 유행처럼 일본식 경영방식을 도입하기도 했고요. 시대가 바뀌어 스트레스 개화 방식의 강한 성과주의가 도입되었지만, 아직은 무늬만 그렇습니다.


새로운 경영시스템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MZ 세대’가 생태계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등장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종(species)이지요. 단합의 상징이었던 체육대회는 최악의 복지로 전락했고, 멘토링 제도는 흉물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어떻게든 챙겨보려 하지만, 역부족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학교도 회사를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세대니까요. 그러다 보니 회사나 상사는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영화 <두 번 할까요>에서는 "퇴근 때만 총명한 것들"이라고 비꼬기까지 하지요.

아이러니는 그런 상사들은 주로 X-세대이고, MZ 세대는 X-세대 부모들이 키웠다는 사실입니다. X-세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때가 1991년입니다. ‘신인류’ 혹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미지수 X를 붙였지요. 가수 015B는 ‘신인류의 사랑’을 불렀습니다. 지금 X-세대들이 환호했던 순간이었습니다. X-세대들은 자신들의 과잉 사랑으로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닐까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MZ 세대! 그중 Z세대는 스스로 가장 불행하다 항변합니다. 묘한 기시감이 교차합니다. ‘모든 세대는 자신의 세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은 반복됩니다. 베이비 붐 세대도, X-세대도 그런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Z세대는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질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청년이 쉽게 집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을까요? 다음 그리고 또 다음 세대는 무슨 말을 할까요?

그래서인지 사회와 기성세대들이 MZ 세대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는 겉으로는 무척 관대합니다. 갈등을 피하려는 의도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돌아서면 불만을 내뿜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어떻게 다 챙겨주냐고?”, “그들 마음의 변화까지 감당하라니 말이 되나?”


MZ 세대들도 하고픈 말 다 못하고 있겠지요.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름의 가치관은 있다.", "우리는 회사가, 사회가, 정부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으로 믿지 않는다.”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을 들어 보셨는지요. 기부가 오히려 일할 의욕을 빼앗듯, 선한 행동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혹시 우리가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합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총리의 말을 40년이 지나 다시 들춰봅니다. 병에 걸린 영국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으니 사회에 기대지 말라는 절박한 충고였습니다. 하지만 MZ 세대들은 정부도 사회도 도무지 믿기 어려우니 ‘스스로’ 각자도생 하겠다고 합니다. 거꾸로 해석해도 말이 통하네요. 역사는 반복되는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에 전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회가 누구예요? 사회?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남자와 여자가 있고, 가족들이 있을 뿐입니다.
And who is society? There is no such thing! There are individual men and women and there are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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