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은 ‘퇴고란 무엇인가?’였다.
H가 내게 보낸 메시지에서 강사 데뷔를 세 시간 앞둔 긴장감이 묻어났다.
―30명 가까이 신청했대. 네가 나 대신 강의할래?
PPT 줄게, 그냥 읽기만 하면 돼.
물론 그럴 수는 없고 H도 긴장감에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일 테다. 나는 “치얼업!”이라고 간단히 격려했다. 내 친구 H는 출판사 편집자로 5년간 일했고 지금은 퇴사 후 쉬는 중이었다. 쉬는 동안에도 책 축제 스태프나 편집 외주 일을 하던 H는, 알고 지내던 동네 책방 사장님으로부터 ‘퇴고하는 법’ 강연 제안을 받았다. 북 토크 진행 경험은 여러 번 있었지만, 직접 강연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하는 듯했다. 너를 보면서 이야기하겠다며 H는 나를 자신의 강연에 초대했고, 나는 그녀의 심신안정에 도움이 되고자 기꺼이 응했다. 친한 친구인 H가 어떻게 강의를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금요일 퇴근 후라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작을 기다렸다.
드디어 Zoom 페이지가 열리고, 오랜만에 보는 H의 얼굴이 화면 중앙에 나타났다.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곧 20여 명의 얼굴이 화면 윗줄을 채웠다. 그중에는 왠지 조금은 어리바리해 보이는 내 얼굴도 있었다.
“여러분, 가능하신 분들은 카메라를 켜주실 수 있나요? 얼굴을 보면 더 소통하기 편할 것 같아요.”
H 옆에 앉은 사회자이자 책방 사장님이 요청했지만, 추가로 카메라를 켜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하지만 나는 H의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바로 카메라를 켰다. 이후로 나는 강연을 들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하는 등 열심히 호응했다.
강연 제목은 ‘글맛 살리는 퇴고의 기술.’ 서론은 ‘퇴고란 무엇인가?’였다.
“퇴고라는 한자는 무슨 한자를 쓸까요? ‘밀 퇴(推)’, ‘두드릴 고(敲)’를 씁니다. 혹시 이 한자를 쓰는 이유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H의 질문에 온라인 강의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나 역시 왜 그 한자를 쓰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H가 금방 다시 입을 열었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가 시를 지을 때 “僧推月下門(중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와 “僧敲月下門(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중 어떤 표현이 더 좋은지 고민했다고 한다. ‘推(밀다)’와 ‘敲(두드리다)’ 두 글자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당대의 문장가 한유를 만나 그의 조언으로 ‘敲(두드리다)’로 결정했다. 이처럼 한 글자, 한 구절을 두고 깊이 고민하고 고치는 태도에서 ‘퇴고’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영어 뜻은 좀 더 직관적이다. ‘퇴고하다’를 영어로 하면 revise, polish다. re(다시)+vise(보다), polish(닦다, 매끄럽게 하다)라는 뜻으로, 퇴고란 글을 다시 보며 고쳐서 매끄럽게 하는 일인 것이다.
“자신의 글을 처음부터 객관화해서 볼 수 없기 때문에 퇴고가 필요해요. 너무 익숙한 글은 제대로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퇴고와 퇴고 사이에 적당한 시간을 두어 보는 눈을 새롭게 해야 해요. 그래도 잡히지 않는 것들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받아서 고치면 돼요. 가도가 한유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요. 그게 편집자로서 제가 해온 일이고요.”
나는 H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친구지만 그녀가 좀 멋있어 보였다.
다소 긴 서론 이후 H는 실용적인 팁들을 알려주는 본론에 진입했다. 그런데 나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집중에 방해가 됐다. 원인은 셀프 캠이었다. 강사나 다른 수강생들을 봐야 하는데 종종 내 얼굴 화면으로 시선이 갔다. 마치 책상 위에 거울을 올려두고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거울 공주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 얼굴을 볼 때는 카메라 기능이 유용했지만, 내 얼굴은 보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셀카 모드 숨기기’ 기능을 써서 다른 참가자들은 내 얼굴을 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내 얼굴이 안 보이게 했다. 다행히 그 이후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H는 문장을 제시하고, 이를 어떻게 퇴고하면 좋을지 수강생들에게 퀴즈를 냈다.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이 답을 Zoom 채팅창에 보냈고, 나도 누구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시작 전에 했던 긴장과 걱정이 무색하게 H는 유머도 섞어가며 순조롭게 강의를 진행했다. 2시간쯤 지나자 80장에 달하는 PPT 슬라이드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나는 질의응답 시간의 끝까지 남아 의리를 지켰다. 무사히 강의가 끝나고, 나는 H에게 수고했다며 강의 잘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H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아쉬운 점은 없었어?
“서론이 좀 긴 것 말고는 다 괜찮던데? 첫 강연인데 재밌게 잘 하더라. 역시 괜히 시작 전에 엄살 피운 거라니까.”
H는 내게 강의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그러다 돌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전화 너머에서 웃었다.
― 내가 책방 사장님한테 너 들어온다고 말했었거든. 그런데 사장님이 강의 끝난 후에 N씨는 안 들어왔냐고 하시더라고. 네 인상착의 말해드리니까 ‘그 하품 많이 하던 사람이 N씨였어?’하고 놀라시던데?
“어? 내가 하품을 했어?”
나는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몰랐어? 너 하품 했어, 그것도 여러 번. 사장님이 ‘저 사람은 억지로 들어왔나? 왜 저렇게 하품을 하지?’ 생각했대. 크큭. 그래서 내가 들어오라고 시킨 거라서 억지로 들어온 거 맞다고 했지.”
H가 농담을 했지만 나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서 피곤하긴 했지만, 그렇게 주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강연 재미있었는데… 그렇게 많이 피곤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지?”
강연이 재미있었다는 내 말은 진심이었다.
― 재미있었으면 됐어. 집이어서 더 풀어졌나 보다.
“…내가 입은 가리고 하품했지?”
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으며 물었다.
“아니, 그냥 하던데.”
H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온라인 강의실에서, 자칭 강사의 지원군이라고 들어와 놓고 입도 가리지 않고 쩍쩍 하품을 했다고? 그것도 여러 번? 내가 참여를 열심히 해서 H에게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하고 내심 뿌듯해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나 생각보다 되게 무례한 사람이었네.”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앓던 이를 빼고 난 듯, 강연이 끝나고 후련해 마지않는 H가 말했다. 뭐 당사자가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책방 사장님에게도 내가 강의를 잘 들었다는 말을 H를 통해 전달할 수 있어서 영원히 ‘강의를 지루해하는 하품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나는 못내 찝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자신은 정말 단면에 불과하구나. 나를 객관적으로 찍는 카메라마저 꺼버리면, 내 모습을 이렇게까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런 일이 삶에선 또 얼마나 많았을까? Zoom 강의가 아닌 현실에서는 아예 셀프 캠을 켜두지 않으니 말이다.
퇴고란 글에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내 행동이야말로 고쳐서 매끄럽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의도치 않게 무례하지 않으려면,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의 창피는 다행이었다. H가 내 지인이 아니었다면 내 잘못을 알 기회가 영영 없었을 테니까. 혹시 앞으로 예의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웬만한 일은 이해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도 어쩌면 나처럼 ‘셀카 모드 숨기기’를 한 채,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