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분이 오셨다’라는 표현을 한다. ‘사춘기’가 왔다는 의미이다. 내가 들은 사춘기의 정의 중에서 가장 정확하다고 느낀 정의는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어떤 분석이나 정의를 하든 자유로운 영혼의 구현체인 우리 아이들은 가장 길고, 가장 찐~하게 사춘기를 지내고 있다. 사춘기의 피크를 기준으로 반감기(半減期)(1)를 논한다면 아들은 군대 제대 후가 될 것이고 딸아이는 30은 되어야 될 것 같다.
중학교에 다니던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 고양이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주장의 내용을 들어보면 일단 필요하다는 결론에 모든 논리에 귀결점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고양이가 없어 공부가 잘 안되고, 고양이가 없어 키가 안 클뿐더러 고양이가 없어 용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두 치’ 이지만 당연히 찬성하기 어렵다는 태도였고 아내는 개털이가 혹시나 불이익이 될까 반대했고 누이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아이는 일단 반대 해 놓고 그 이유를 몇 가지 가져다 댔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사춘기 아이들의 협상 태도는 북한 김정은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 결론 내놓고, 자기의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은 동지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창 또는 그 비슷한 것으로 ‘죽탕을 쳐’ 철저히 타도해야 할 철 천지 ‘원쑤’로 편 가르기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는 협상을 하지만 뒤로는 지 할 거 다 한다는 점이다. 딸아이가 고양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이미 고양이 무료 분양하겠다는 네티즌과 소통하고 있는 중이었고 분양 날짜까지 확정한 상태였다. 그때까지 다른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자 자기 맘대로 판단해서 고양이가 있는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가서 고양이를 인수받은 후 집으로 오지 않고 ‘동지’로 미리 확보한 부천 외갓집으로 내뺐다. 친정 부모님의 연락을 받아 뒤늦게 자초지종을 듣게 된 아내는 당연히 없는 딸을 대상으로 날개를 있는 대로 털었지만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고, 부천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채로운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론은 ‘고양이(2)’ 데리러 간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를 딱 보는 순간, 나는 무엇보다 개털 이를 가장 염려했다. 일단 덩치(특히 몸길이)가 개털이 보다 훨씬 컸다. 나이도 개털이 보다 4살이나 어렸다. 즉 물리적으로 개털이는 고양이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염려는 잠깐 사이에 불식되었다. 개털이는 고양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문제는 고양이가 온 이후로 딸아이는 전혀 방청소를 하지 않고 옷장 문을 열어 놓고 산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이 고양이에게 좋을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옷을 정리해 넣어 줄려면 옷장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오고 침대 밑에 청소기를 넣으면 침대 밑에서 튀어나오고 개털이 털보다 훨씬 가늘고 가벼운 털이 ‘온 사방 군데에 널려 있는 통에 아내는 딸아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것을 몇 번 반복했다. 이 문제는 아내가 딸아이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봉합되었다. 결국 딸아이의 벼랑 끝 전술이 완벽히 성공했다.
그 이후로도 개털이 와 고양이는 접촉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교환학생 학생으로 유럽으로 출국해 없는 동안에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고양이가 갑자기 나와 아내에게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펄쩍 뛰어’ 무릎 위에 올라오기도 하고 심지어 누워있을 때 배에 올라타기까지 했다. 당연히 개털이는 질투심에 짖어대며 야단쳤고 고양이가 내려오면 소처럼 ‘머리로 들이받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귀국 하자 고양이는 태도가 완전히 돌변해 이전과 마찬가지로 ‘쌩(3)’을 까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개털이가 늙어가면서 가끔 고양이 밥을 슬쩍 먹기도 하고, 짜 먹는 고양이 간식에 관심을 보이기도 해서 둘이는 오히려 적당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1) 사춘기의 증세가 반으로 줄어드는 때까지 걸리는 시간. 원래 사전적 의미는 ‘방사성 원소나 소립자가 붕괴 또는 다른 원소로 변할 경우, 그 원소의 원자수가 최초의 반으로 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방사성 원소 등은 관리만 잘한다면 사춘기에 비해 예측 가능하고 위험하지 않다.
(2) 여기서부터 ‘고양이’는 고유명사이다. 딸아이가 고양이 이름을 고양이라고 붙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양이는 발정이 온 상태였고 그래서 오는 그날부터 온 식구가 잠을 설치게 울어댔다. 그것이 그 네티즌이 고양이를 무료 분양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물론 딸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3) (속되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고의로 무시하거나 모르는 체하다의 의미로 딸아이와 고양이의 특징이다. 특히 자기가 불리하고 아쉬울 때는 ‘쌩’을 풀고 배시시~ 하다가 아쉬울 것이 없을 때는 즉시 ‘쌩까는 모드’로 전환해 충분히 자기의 것을 즐기고 절대 남과 나누지 않는다.
** 윗 사진. 고양이.
고양이를 딱 보는 순간, 나는 무엇보다 개털 이를 가장 염려했다. 일단 덩치(특이 몸길이)가 개털이 보다 훨씬 컸다. 나이도 개털이 보다 4살이나 어렸다. 즉 물리적으로 개털이는 고양이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