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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Aug 07. 2022

글 파는 소녀

오늘도 단편 소설인 척하는 비밀 일기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읍니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창작과 예술에 능해 팔방미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읍니다. 게다가 성품도 순하고 따뜻해서 만인에게 착한 소녀였답니다. 그래서 모두가 소녀는 참 좋은 사람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하였읍니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엄한 사대문 집안에서 자라, 지성인이라면 지켜야 한다는 아래의 4대 덕목이라는 것들을 준수하며 자랐읍니다.

 - 배려

 - 존중

 - 사랑

 - 관심

그렇기에 소녀의 곁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나 봅니다.


시간이 흘러 가세가 기울어버리고, 소녀는 노쇠한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가장이 되었읍니다. 고운 손, 고운 마음을 가진 소녀는 노쇠한 부모님께 짐이 되지 않기 위하여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작고 네모난 볏짚 돗자리를 얻어다 고운 보자기에 싸 두었던 정성껏 쓴 글을 꺼내왔읍니다.


소녀는 글을 앞에 두고 쪼그려 앉았읍니다. 정신없는 도떼기시장바닥에서 그녀는 그저 장터 손님들의 시선에 걸리적거리는 존재일 뿐입니다. 다리가 아파 자세를 고쳐 앉는데, 그새 소녀의 앞으로 옆으로 글을 파는 글쟁이들이 바글바글해졌읍니다.


옆에 앉은 이 친구는 글을 참 잘 쓰는 것 같읍니다. 글이 아주 재밌읍니다. 별거 아닌데 글이 술술 넘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읍니다. 앞에 앉은 저 친구도 글이 참 좋은갑습디다. 많은 사람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을 권하겠다고 합디다. 소녀는 그런 그들을 보고 있읍니다. 소녀 앞이 텅 비인 덕에 유난히도 그들과 그들들이 잘 보입니다.


옆에 앉은 이 친구가 책이 늘어났다며 자리를 조금만 내어줄 수 있냐고 물어왔읍니다. 그녀는 이 친구를 위해 알겠다고 합니다. 앞에 앉은 저 친구가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뒤로 물러나 줄 수 있냐고 합니다. 그녀는 저 친구와 행인을 위해 돗자리 귀퉁이를 접었읍니다. 그녀는 점점 쭈그려 앉았습니다. 이 친구 저 친구 다들 잘 되는가 보다 기쁩니다. 여전히 기쁨은 남의 일입니다. 그저 지켜보니 흐뭇합디다.


어찌 됐건 소녀의 곁에 있는 참 많은 사람들은 소녀를 열심히 응원해주었읍니다. 소녀의 글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그녀의 글은 참 좋은 글 같다며, 그렇지만 글은 잘 안 읽는 편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였읍니다. 그래서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시장바닥은 어쩔 수 없읍니다. 그날도 소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한 채 혼자 글을 쓰다 마음이 답답하고 앞날이 막막해서 잠시 마실을 나왔읍니다. 소녀는 소녀가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소소하게 이야기 나눌 친구들이 그리웠읍니다.


친구는 친구를 부르고 친구도 친구를 부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주막에 둘러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모두들 서로 영문도 모르는 채 주막에 둘러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소녀가 아끼던 매실이도 친구를 데리고 왔읍니다. 매실이가 말했읍니다.

"여러분, 매실이가 친구 자두를 데리고 왔어요! 자두는 글을 쓰는 작가예요, 글이 참 좋아요. 모두들 글 한번 읽어보시고, 다들 자두랑 친하게 지내세요!"


그리곤 매실이가 자두에게 소녀를 소개해주었읍니다.

"아, 그리고 이분은... 그냥 여기 근처 사시는 친구"


소녀는 심장이 무너지고 바스러져 아무것도 남지 않았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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