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별 Dec 17. 2020

영하 11도 스무디, 실화입니까?

‘얼죽아’에 놀라지 마시라!

앗 진짜 춥다!


 아침에 환기시키는데 너무 추워 날씨를 검색하니 앗! 현재 기온 영하 11도!

 '오늘은 따뜻한 음료가 많겠네' 하며 가게 문을 열었다.


 강추위 속 따뜻한 코코넛 라떼는 정말, "말 걸지 말아 줘~" 써붙인 뒤, 방문 닫고 혼자 마시고픈 맛이다.


네이버 후기 중/"사장취향저격상"으로 코코넛 한잔 드리고 싶지만/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어 아쉽/혹시 이글 보시면!!


한번 더 앗! 왜 이리 얼음을!!


 이렇게 추워도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보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얼어죽어도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줄여 '얼죽아'라 한다는데, 얼죽아 고객님께 “음료 나왔습니다~” 하며 문 밖이 염려스럽다. 털장갑을 서비스로 드려야만 할 것 같다.


세번째 앗! 얼죽아는 애교!!!


세번째 앗!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는 애교다.

이 날씨에 연속 스무디, 실화입니까?

 이어진 주문표를 보니 웃음이 난다. 얼죽아도 아니고 무려 '얼죽스'라니! 엄마 마음이 벌떡 일어선다. "아니 이렇게 추워도!!! 이 추위에 스무디는 벌칙인데!" 하니 마치 상장받는 어린이처럼 어깨 으쓱하며 "추워야 제 맛이죠!"


 ‘롱 패딩은 입었으나 맨발의 크록스’로 등장하는 귀여운 친구들이다. (크록스면 다행. 맨발의 슬리퍼 고객님도 많으시다. 맙소사!) 크록스 밴드로 감싸진 당당한 뒤꿈치에게 인사하며 생각한다. 저 호기로운 젊음에 현수막을 제작해 경의를 표해볼까!


                       <오 나의 친애하는 얼죽스! 그대의 젊음을 동경합니다!>


 "아니 영하 11도라는데(물론 아침보다는 높아졌겠지만 체감온도는 여전) 스무디를 여럿이 주문하더라!"하니 아르바이트 친구가 이야기한다. "사장님! 오히려 이럴 때 스무디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녹지 않으니 그대로 들고 가서, 따뜻한 집에서, 만든 상태 그대로의 스무디를......"

 아~ 역시! 눈 앞의 찬 바람만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숲’을 보는 똑똑한 친구다. ‘마이너스 11도에 스무디를 주문하는 이유’로 문제를 낸다면 만점을 주고 싶은 답이다.


 얼죽아 친구들이 다시 오면, 녹지 않은 스무디 본연의 얼음 식감을 즐기려는 찐 애호가들에게

"너희 정말 스무디에 진심이구나!" 하게 될 것 같다.


너 때문에 열불 나서!


 한겨울 얼음이 청춘의 주문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엄마와 고등학생 딸이 함께 주문을 하셨다. 딸은 달고나 버블티(물론 아이스), 엄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님께서 묻는다. "엄마 왜 오늘 아이스?"

엄마는 대답한다. "너 때문에 열불 나서!"


 아하! 마음속으로 엄마 고객님 두 손을 덥석 잡으며 생각했다. '열불 때문이라면 저도 아이스 마실 자격이 충분하군요!'


 종종 오리지널 버블티 한잔을 주문하시는 어르신 단골분이 계시다. 항상 마스크, 모자, 안경, 니트릴 장갑으로 무장하고 오신다. (소중한 방문에 대한 보답은 소독과 환기)

 "오늘도 아이스 주문하신 것 맞으시지요?" 혹시 잘못 주문하셨나 확인한다. "응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잖아. 버블티는 시원해야 맛이 나지. 집에만 있는데 확진자가 줄지는 않고 이게 무슨 난리야. 답답해 죽겠어서 이거라도 마셔보려고 나왔어."


 타오르는 젊음 덕이든 열불 나는 일상 탓이든 짜증 나는 코로나 때문이든, 영하의 기온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뜨거움 달래는 일을 돕고 있다 생각하니 뿌듯하다.




 '나도 얼음 좀 씹어 볼까' 하며 제빙기를 열다 다시 닫는다. (아니야. 종일 마주하는 얼음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상쾌하지. 환기시킬 때 해일처럼 공격하는 찬 공기만으로도 열날 틈 없지.)


 얼음 대신 달고나 조각을 와. 그. 작. 씹어본다.


 와. 나도 새해에는 얼죽스 친구들처럼 살아볼까.

 그래. 눈 앞의 추위를 제대로 마주해보자.

 작아지지 말고 웅크리지 말고 피하지도 말고.


 스무디 주문하듯 당당하게 새해를 마주해야지. "영하 11도지만 스무디, 콜!", "41세이지만 도전, 콜!" 나를 겁먹게 했던 꿈들을 스무디 컵에 담아 와그작와그작 씹어봐야지.


 먹다 보면 녹겠지. 먹다 보면 얼얼함 뒤 달달함이 느껴지겠지.


 “이 나이에?”, “이 경기에?”, “아이 엄마가?”, “네 성격에?”

 하는 질문들에 얼죽스 친구들처럼 나도 어깨 으쓱. “어려워야 제 맛인데!” 하며 호기로운 맨발로 마구 달려봐야지.


 함께 맨발로 달려주는 친구가 있으니까. 추위 덕에 스무디 본연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건 진짜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니까. 그리고 곧 따뜻한 집에 도착할 테니까.


크록스부터 사야 하나!


이전 07화 아 6학년 채준이 정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