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신경이 장착되지 않은 몸으로 세상에 나와 남들 다하는 그 어떤 운동도 나를 쉽게 허락하지 않은 가운데 달리기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어 2년 전까지만 해도 100M 이상의 거리를 이어서 달려본 적이 없었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인다 해도 다음 버스를 탔으면 탔지 뛰어가는 일은 거의 없는 사소한 생활운동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몸뚱이였다
신통치 않은 것은 육상, 수상을 가리지 않는 듯 한 번은 큰 마음먹고 수영 강습 등록도 해봤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머리만 물에 동동 뜨는 이상한 모습으로 간신히 허우적거리다 내 갈 길이 아니다 싶어 미련 없이 집어치운 적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물이 무섭다
물이 무서운 사람이 수영이 될 리 있겠는가
다만 살기 편한 이 세상에는 성인용 튜브나 구명조끼 같은 수영 무능력자들을 위한 도구들도 있다 보니 그럭저럭 얕은 물놀이 정도는 하며 살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철인 3종을 못하는 이유는 수영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또 너무 당연하게 자전거도 못 탄다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는 머리 털나고 타 본 적도 없다
그래도 자전거는 어찌어찌하다 보면 굴러가는 수준으로는 탈 수 있을 수도 있겠으나 수영은 확실히 아니다
혹시 철인 3종에서 구명조끼 입고 수영해도 되는지 물었다가 비웃음만 산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거나 철인 3종 경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라면 운동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 데다 특히 몸이 주가 되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 않은가
내 비록 신체의 진화를 이루지 못한 운동 능력 미달자로 살아가고 있으나 이 3종 중에 허접한 내 능력으로도 가능한 종목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으니
바로 마라톤이다
마라톤의 좋은 점 중 하나라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마라톤도 기록경기이고 빨리 달리면 좋겠지만 나를 굳이 분류하자면 철저히 '펀 런'의 세계에서 마음 편히 달리고 있는 해피한 러너이기 때문에 닿을 수 없는 쓸데없는 과욕에 사로잡혀 이 즐거움을 깨고 싶지 않다
애초에 장거리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자기만의 페이스로 오래 달려 목표에 도달하는 이 종목의 성격에 있고 혼자 고요히 달리는 이 형태에서 벗어날 마음이 없다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즐기게 된 것도 최근이라면 최근의 심경 변화일 뿐 굳이 과거를 털어 보자면 초등 시절 나는 전교에서 가장 달리기가 느린 어린이 중 한 명이었고 남들 다 만점 받는다는 체력장에서도 당당하게 18점을 받아 어디 신체에 하자 있느냐는 비웃음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던 이 방면의 루저였다
다만 골고루 못하는 가운데 그나마 나았던 종목이 바로 오래 달리기
단거리 달리기를 시키면 꼴찌로 들어오는 애가 의외로 오래 달리기에선 손꼽히는 등수로 선을 통과하곤 했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고 그 부분을 대단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힘들게 오래 뛰는 게 싫어서 그럴 바엔 좀 더 힘내서 빨리 끝내자는 단순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름 괜찮은 기억이 있다 보니 마라톤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스스로 받아들이는 저항이 적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굉장히 오랫동안 달리기를 할 일이 없었다
출근길에 지하철 계단만 급히 올라가도 숨이 차 오늘은 하루 쉬어야 하나 생각을 하던 인간이고 한 때 결핵을 심하게 앓아 폐라면 벌벌 떠는 데다 심지어 심장질환 가족력까지 있는 건강 염려증의 주인공인 내가 스스로 마라톤을 선택하다니 나를 사로잡은 이 운동의 매력은 대체 무엇일까
결론의 한 부분을 먼저 이야기한다면 나는 풀코스 마라톤의 완주자다
기록은 별 볼 일 없지만 난 중도포기도 안 했고 제한시간 안에 당당히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어쩌다 보니 완주를 했다는 말은 내 나름 쏟아부은 근성과 노력을 부정하는 것 같아 하지 않겠다
첫 기록은 처참했지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잘해 볼 마음이 있다면 뛰면 뛸수록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기록도 차츰 나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몸으로 증명해냈지 않은가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은
누구라도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다. 마음만 있다면!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떻게 뛰던 그건 뛰는 사람 마음이다
잘 뛰면 좋겠지만 못 뛸 수도 있고 출발에서 완주까지 서너 시간이면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섯 시간을 꽉 채워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늦게 들어온다고 해서 보람이 반쪽이 되거나 성취감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다
한 번쯤은 달리기를 해볼까 생각을 해봤을 수 있는 가정하에 실행에 옮기기까지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갑자기 밖에 나가 뛰려니 장소도 마땅치 않고 사람들 틈에서 뛰는 것도 왠지 부끄럽다
누군가 같이 뛰면 좋겠는데 일행이 없다
하다보니 다 내 얘기다
폼나게 잘 뛰지도 못하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네? 속으로 비웃는 건 아닐까
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생각까지 하느라 폼은 점점 소극적으로 종종걸음 치듯 변해간다
내가 뛰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창피함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저게 정녕 달리기란 말인가
발바닥이 잠깐 땅에서 떨어졌다 도로 붙는 찰나의 순간을 슬로 모션으로 돌려보는 것 같은데
그게 현실이었다
폼은 얼어 죽을
스포츠 광고나 영상 속의 시원한 폼으로 겅중겅중 뛰는 그들의 모습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지 말라
애초부터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의 주제 파악은 빠를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몇 번 밖에 나가 달려보면 폼도 주위 시선도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된다
뛰는 행위 자체가 힘들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다 보면 주위가 점점 하얗게 지워지게 될 테니 말이다
다시 정리를 해보면
나는 풀코스 마라톤을 뛸 수는 있지만 턱걸이 완주자다
달리는 건 좋아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달리지는 않는다
혼자지만 다양한 대회에 적극 참가하고 완주메달도 꼬박꼬박 받아 목에 걸며 대회 자체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달리기는 내겐 완벽한 취미이고
앞으로 한동안 이어질 이 글은 느리고 혼자여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는 달리기에 대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