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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찌 Oct 20. 2024

3-3. 미친놈, 답답한 놈, 멀쩡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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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이 된 후, 인격을 급격하게 변하게 만든 장소는 두 곳이다.

  하나 회사. 다른 하나 ‘차 안’.

  두 공간 모두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공통점이 사람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게 틀림없다. 바로 세상에는 상식 밖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


  두 공간에 있자면 진절머리를 치게 된다. 도대체 세상에는 왜 이해할 수 없는 미친놈들이 이렇게 많을까. 말세야, 말세. 나는 유별날 것 없이 평범 그 자체인 사람일 뿐인데, 다들 그냥 평범하게 좀 살면 안 되나? 그냥 상식적으로 사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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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하다 보면 제2의 인격이 나온다고 했던가. 숨겨진 인격이 나오는 건지, 그냥 인격이 파탄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많은 이들이 운전할 때면, 평소에는 꺼내지 않던 거친 언어들을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욕쟁이라고 매도되기에는 억울하다. 도로, 특히 출퇴근 시간대의 도로에서 운전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미친놈이 위험천만하게 끼어든다. 나는 교통법규를 준수한 속도로 가고 있는데, 뒤에서 클락션을 귀에서 피가 나도록 울려댄다. 나는 창문을 꾹 닫은 채, 차 안이 터지도록 소리를 친다.

 - 미친놈이 저기서 튀어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 머리만 들이밀면 다냐, 응, 안 비켜. 안 비켜 줄 거야.

 - 그렇게 빨리 가서 뭐 하냐. 이것 봐. 어차피 이렇게 신호등에 걸려서 다 만날 것을.

  그들을 보면, 목숨이 아흔아홉 개는 되는 것 같다. 저렇게 가봐야 고작 3~5분 빨리 갈 텐데, 뭐가 저렇게 바쁠까.     


미친놈을 보내고 나면, 하루를 48시간처럼 여유롭게 사는 답답한 놈을 만나게 된다.

 - 아니, 도로 한가운데에서 내리려면 빨리나 내리던가, 뭐 하는 거야.

 - 여기 좌회전 짧다고! 지금 핸드폰 봤지! 나 출근 늦는다고!”

 - 시속 제한 90인 고속도로에서 50으로 가는 건 뭐 하는 걸까요?

  그들 뒤에서 나는 열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날카롭게 경적을 울린다. 상대의 닫힌 자동차 창문을, 나 역시 창문을 꾹 닫은 채로 노려보며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닿지 않을 욕이라는 걸 알지만 욕을 내뱉지 않으면 내 속이 터질 것 같다.     



  물론, 나는 쭈글이니까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곧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헤어질 사이이며, 서로를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므로.

  가끔 빠르게 창문을 내리고 욕을 한 후, 도망치듯 사라지는 미친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차 안에서만 퍼지도록 공간의 틈을 닫고 욕한다. 상대의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은 미친놈도, 답답한 놈도, 멀쩡한 나도 되도록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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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을 파탄 내는 두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회사와 차 안.

  두 경우 모두 다양하게도 화나게 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아는 회사에서 우리는 끝내 말을 삼킨다. 그러나 차 안에만 들어오면 회사에서 참았던 욕까지 한꺼번에 터트리듯 성격을 드러낸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미친놈과 답답한 놈에게. 왜 나처럼 정상일 수 없는가 이해하지 못하며.      


  하지만 끝내 말을 삼켰던 회사에서 더 지독한 상흔이 남은 건 아이러니하다. 차라리 표현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까. 아, 그래도 사회생활이니까 운전대를 잡았을 때처럼 욕은 하지 않더라도, 그래도 조금쯤은 말해도 괜찮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잘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곤 한다. 누군가가 욕지거리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말에 시속 60킬로미터보다 빠르게 지하로 도망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나의 작은 한숨과 참지 못했던 탓함에 누군가 역시 그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미친놈이 너무 많으니까. 답답한 놈도 너무나 많고.

  미친놈이 답답한 놈이 되고, 답답한 놈이 실상은 나고, 내가 바로 미친놈이 된다.

  


  그래도 하나의 공간에서는 벗어났는데, 오늘은 좀 멀쩡하게 살자.

  내 앞의 답답한 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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