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의 백수 외 생활. 다른 모습의 일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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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정도 스파 브랜드의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딱 그 정도면 퇴사 전에 벌어 둔 돈을 까먹지 않고도 곧 만기가 되는 적금에 넣어야 할 돈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슬아슬 줄을 타다가, 결국 떨어져 나와 단기 일을 구하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모집 글을 보고 간단하게 문자로 지원했다. 설명에 나온 대로 이름, 성별, 나이, 근무 가능일과 시간을 적어 보냈다. 그날 저녁 짧은 답장이 왔다.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어디에 있는 창고로 출근하시오.’
면접은 필요 없었다. 당연히 특별한 자격증이나 경력도 필요치 않았다. 하긴, 박스를 열고, 옷을 개고, 바닥과 거울을 닦는 일에 특별한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소위 ‘연령 무관’, ‘성별 무관’이 적힌 인력 모집 글에서 뽑는 근무의 특징이다. 거기에 ‘친구와 함께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까지 쓰여 있다면, 확실하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이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일.
비숙련직이다.
내가 들어간 것은 ‘비숙련직’에서 ‘비숙련 계약직’, 거기에 ‘단기 비숙련 계약직’까지 더해졌다. 소위 말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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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큰 규모로 새로 오픈하는 가게인지라, ‘단기 비숙련 계약직’만 서른 명이 넘었다. 당연히 우리를 위한 별도의 유니폼이나 작업복은 없었다. 고작 며칠, 많아야 한 달 근무하는 우리를 위한 옷을 제공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을 테니까. 사전에 안내받은 ‘상의, 하의는 되도록 무늬가 없는 검정 옷. 청바지까지는 허용’대로 죄다 새까맸다.
각자의 옷장에서 최대한 그림자 같은 옷들을 입고 출근한 모습이었다. 검정 옷에 검정 면바지, 혹은 청바지를 입은 우리의 옷은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또 미묘하게 달라서 은근히 손님들은 우리를 직원으로 잘 구분하지 못했다.
정식 유니폼은 아니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옷이 걸린 벽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검정의 우리는 자주 마주쳤다.
- 창고 가방 옆. 호두과자 사놓음.
- 군량미 확인했다. 오버.
스치듯 귀에 짧게 소곤거리며 장난을 쳤다.
구석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개고 있는 동료를 발견하면 옆에 자리를 잡고 함께 개었다. 그러다 함께 있지 말라는 정직원에 의해 개미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모이곤 했다. 함께 있으면 일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걸까.
- 오늘 어디 쪽 일해?
동갑인 걸 안 뒤로 말을 놓은 동료 ‘성’에게 물었다.
- 운동복이랑 키즈존.
- 나 여성복 라인인데 자주 만나겠네.
- 오후에는 창고야.
- 저런… 오늘 새로 주문한 것들 온다는 것 같던데.
- 아무래도 점장이 나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니까.
그냥 네가 키가 커서 그런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내게 ‘성’은 퍽 억울한 듯했다.
- 진짜라니까. 어제도 컴퓨터로 뭐 작업하는 게 안 되는지 혼자 계속 욕하길래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보면 뭐 아냐고 나가라고 소리치더라니까.
‘성’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7년을 일한 숙련자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 전문가를 못 알아봤네.
그림자가 아닌 색을 가진 일부 ‘사람’들은 비숙련자인 우리를, 그 어디에서도 숙련자였던 때가 없던 것처럼 바라보았다. 노력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여기기도 했다. 검정 옷 안에도 쌓여온 삶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참 편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하는 우리에게, 누구도 무언가 큰 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우리 중에는 타인의 기대에 지친 그림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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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창고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서로의 간단한 면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3년을 넘게 일했고, 누군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7년을 일했으며, 누군가는 수학과를 졸업한 선생님이었고, 누군가는 경영학과를 나와 중견기업에 다니던 이었으며, 누군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공장만 열 군데는 다녀본 이었으며, 누군가는 올해 초 화학과 나온 졸업생이었다.
- 저는 취업전선에 바로 안 뛰어들고 워홀(워킹 홀리데이) 다녀오려고요.
나보다 6살 어린 화학과 졸업생인 ‘최’가 말했다. 가끔 서로 묻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혼잣말하듯이 자신에 대해 말하곤 했다.
- 좋지. 캐나다? 호주?
- 아이슬란드요. 기회가 되면 오로라를 꼭 보고 오고 싶거든요.
‘최’는 그 비용을 모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는 배시시 웃으며 옷을 접었다.
오로라. 하늘의 빛나는 길.
하늘의 길을 본다고 우리의 길을 알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우리는 이따금 길을 찾으려고 엉뚱한 길로 떠난다. 확실하지도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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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 지났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 나온 한 대사에 눈이 멈추었다.
“있잖아, 정말 나쁘지 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 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잊고 지내던 그림자들이 떠올랐다.
단기 비숙련 계약직 일이 끝나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더는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았기에 나눌 수 있던 대화들을 떠올린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그만두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아마 그림자가 아닌 색을 지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다면 그렇게 쉽게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끝나면 드라마 서편제에 나왔던 섬에 가겠다던 경영학과를 나온 퇴사자는 섬에 갔을까? 낭만적인 화학과 졸업생은 아이슬란드에 갔을까? 애인도 없으면서 벌써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는 삶은 싫다던 개발자였던 사람은 결혼했을까?
알 수 없다. 나도 그때는 템플스테이나 할 거라고 해놓고는 벌레가 싫어서 가지 않았으니까.
그냥 지금 바라는 일들을 남발한 공수표들이다. 하기 싫어지면 언제든 하지 않을 수 있는 다짐들. 어차피 헤어질 사이이기에 말할 수 있던 바람들. 하지만 그랬기에 다양한 삶의 흔적과 꿈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뭐, 그거면 됐지. 누구보다 인간미 넘치던 까만 그림자들의 오로라 같던 꿈들이 이루어졌는지, 아닌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