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 흔적을 남긴다
한줌 햇살이 베란다 위에 반쯤 걸려 있는 시간
빨래를 말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응접실 소파에 게을리 누워 있던 나는
벽에 남은 껌자국 몇개를 알게 되었다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 아웅다웅
잠도 덜 깨고 학교 버스를 타야하는
아이들 잠을 깨우기 위해
아내는
매번 소파에 웅크려 얼핏한 잠을 청했을 것이다
잠들기 전 가물가물한 정신을 차려
입 속에 물고 있던 껌을 간신히 벽에다
붙여 놓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
떨어지지 않은 자국 몇 개 남겨 놓았을 것이다
키 작은 아내가 이제는
자기보다 훌쩍 키만 커버린 아이들을 향해
남겨 둔 사랑의 흔적 몇개
내 부끄러워진 손으로
몇차례 어루만져 보았다
세탁기가 멈추면 멈추면
너무 늦기전에 베란다 남은 햇살 위로
식빵을 굽 듯이 옷가지를 널어야겠다.